Mahler

아바도/베를린필,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romantiker74 2020. 6. 29. 13:29

MAHLER: Des Knaben Wunderhorn

 

 

Anne Sofie von Otter
Thomas Quasthoff

Claudio Abbado (conductor)
Berliner Philharmoniker

 

  녹음: 1998/03 Stereo, Digital
장소: Berlin, Philharmonie, Grosser Saal

2000년도에 나온 샤이의 뿔피리 음반을 들어보고 교향곡에 비해 관심이 훨씬 덜해서 그다지 즐겨 듣지 않았던 뿔피리에 관심이 생겨서 구매하게 된 음반이다. 아바도의 뿔피리 음반은 샤이의 음반이 나온 2000년과 비슷한 시기인 1999년에 나왔다. 20년전인 당시에 내가 음반 기획자이고 마음대로 섭외해서 드림팀을 만들어 뿔피리를 녹음하라고 한다면 바로 이 조합으로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바도 지휘에 베를린필, 남녀 성악가로 크바스토프와 오터, 이보다 나은 조합은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도 없을 것 같다. 과연 명불허전일까 아니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을까?

1. 기상나팔
첫 트랙은 기상나팔이 차지했다. 당연히 바리톤인 크바스토프가 불렀고 음반을 트는 순간 흘러나오는 크바스토프의 미성에 이 앨범이 도저히 나쁠 수가 없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담담하게 시작해서 점점 감정을 끌어 올려서 체념하듯 끝나는 곡의 흐름을 완벽하게 만들어 갔다. 아바도와 베를린필의 반주는 간주 부분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강렬하고 신랄한 느낌을 주어 곡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2. 라인의 전설
라인의 전설은 오터가 불렀고 베를린필의 결이 아름다운 현악이 돋보였다. 오터의 음색은 역시나 우아했고 강세점들을 강조해서 불러서 랜틀러같이 리드미컬한 느낌을 주었다.

3. 불행할 때의 위안
남녀가 번갈아 나오는 노래들을 이 앨범에서는 샤이의 앨범과 마찬가지로 혼자 1인 2역을 소화해서 녹음을 했고 1인 2역 노래들을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크바스토프가 불렀다. 불행할 때의 위안도 크바스토프가 불렀는데 소녀 부분을 여성적인 느낌이 나게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후사르 부분에 비해서는 부드러운 느낌이 나게 불렀다. 

4. 헛수고
남녀가 나오는 노래이지만 여성의 비중이 높은 노래여서 보통 여자가 부르고 여기서도 오터가 불렀다. 긴 호흡에 첫 박에 강세를 잘 주어 음악적으로는 리듬감을 살렸고 내용상으로는 남자에게 뭔가를 조르는 느낌을 잘 표현했다.

5. 파수병의 밤노래
이 노래도 남녀가 번갈아 나오는데 크바스토프가 불렀다. 남녀가 바뀔 때 쉼표를 유난히 길게 가져간 것 같다. 가사 내용도 남녀는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은 대화를 이어가는데 아바도의 해석은 그 단절감을 더욱 강조한 것 같다. 템포도 단절감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장치가 되는 것 같은데 여자 부분에서는 템포를 늘어뜨리면서 긴 호흡으로 노래했다. 이렇게 노래해도 숨이 안 끊어지나 싶을 정도인데 크바스토프의 호흡에 박수를 보낸다.

6. 지상의 삶
지상의 삶은 아이와 엄마의 대화이고 오터가 불렀다. 배고프다고 빵을 달라는 아이의 Gib mir Brot가 아주 강렬하게 들렸다. 신랄한 느낌의 반주가 점점 긴장감을 끌어 올리는 게 인상적이었고 마지막에 빵이 구워졌지만 아이가 관에 누워있다는 부분에서 템포를 떨어뜨리며 Totenbahr(관)를 강렬하게 부르는 게 인상적이었다.

7. 탑속 죄수의 노래
어두운 현실 속의 남자와 현실 밖에 있는 여자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있는 탑속 죄수의 노래는 파수병의 밤노래와 유사한 면이 있다. 아바도의 해석은 둘의 유사점보다는 차이점을 강조한 것 같다. 파수병의 밤노래에서는 장면 전환에서 쉼표를 강조했는데 탑속 죄수의 노래에서는 장면전환에서 단절감을 최소화했다. 자유를 꿈꾸는 탑속 죄수와 마음은 죄수를 향하고 있는 소녀의 생각의 방향이 한쪽으로 모이는 것을 표현한 듯 했다. 

8. 누가 이 노래를 생각해 냈을까?
오터가 크바스토프만 호흡이 긴 게 아니라는 걸 자랑하듯 긴 호흡으로 정확한 음정의 멜리스마를 내서 감탄을 자아냈다. 샤이의 음반에서 들었던 보니에 비해서는 메조 소프라노인 오터의 경우 우아한 느낌이 강했다. 

9. 물고기에게 설교하는 파도바의 성 안토니우스
보통 남자가수가 부르고 이 음반에서도 크바스토프가 불렀다. 노래는 과장없이 담담한 편이었는데 아바도와 베를린필의 반주는 교향곡 2번의 3악장을 자꾸 떠올리게 할 만큼 극적이고 존재감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곡이 끝나면 Urlicht가 나와야할 것만 같았다. 

10. 높은 지성에의 찬미
남자가수가 부르기도 하고 여자가수가 부르기도 하는 곡인데 누가 부르냐에 따라 느낌이 꽤 다르게 나오는 곡이고 9번 트랙의 안토니우스를 크바스토프가 불러서 오터가 부를 줄 알았는데 크바스토프의 목소리가 등장했다. 남자가수가 불러도 테너가 부를 때는 ‘이야’같은 의성어를 강조하기도 하는데 크바스토프는 담담한 편이었다. 바리톤의 음성이어서 그런지 할아버지가 옛날 이야기 해주는 느낌이었다.

11. 아름다운 트럼펫이 울려퍼지는 곳
남녀가 등장하는 노래이지만 여자가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앨범에서도 오터가 불렀다. 표정이 풍부하고 감성이 충만한데 느끼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훌륭했다.

12. 소년고수
당연히 크바스토프가 불렀다. 조였다 풀었다 하는 템포와 강약 때문인지 반주, 노래 모두 섬뜩했다. 특히 4D 녹음의 장점인 것 같은데 팀파니 소리가 강렬하게 녹음되어 가슴을 울리는 것 같았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주었고 크바스토프가 구현하는 공기반 소리반의 감성도 훌륭했다.

13. 원광
기대했던 만큼 오터의 노래는 고혹적인데 카리스마도 없지 않아서 왜 오터가 말러 교향곡 2번 녹음에 자주 기용되지 않았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명연으로 불리우는 자넷 베이커나 크리스타 루드비히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명불허전이었다. 아바도-베를린필-오터-크바스토프 조합이 베스트 오브 베스트인 것은 맞지만 극단적인 표현을 자제하면서 지적인 해석을 보여주는 아바도와 메조-바리톤의 조합이라 밋밋할지 모를 것 같다는 우려도 있었다. 결과를 놓고보면 오터, 크바스토프 모두 표현력이 뛰어나고 아바도는 평소보다는 배경으로 깔리는 반주가 아닌 교향악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반주를 들려주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 같다. 굳이 샤이의 음반과 비교하자면 메조에게 맡기기 어려운 천상의 삶이 빠진게 살짝 아쉽기는 하지만 고른 완성도와 목소리의 매력을 보았을 때 아바도의 음반에 오랫동안 손이 더 많이 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