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ckner

브루크너 교향곡 7번 E장조

romantiker74 2020. 3. 10. 13:11

라이프치히 이미지 검색결과


Bruckner, Symphony No. 7 in E major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은 교향곡 4번 ‘로맨틱’과 함께 브루크너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일 것이다. 교향곡 4번에 공감을 못하는 분들도 브루크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교향곡 7번의 2악장의 아름다움은 쉽게 공감을 한다. 이 작품의 2악장은 어쩌면 말러의 교향곡 5번의 4악장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에 등장해서 비장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사람들의 뇌리에 남게 되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한글로 브루크너 7번을 검색하면 상위권에 드라마의 장면이 검색이 된다. 

브루크너는 1881년 6번 교향곡을 완성하고 바로 7번 교향곡의 작곡에 들어갔다. 1882년 10월 스케르초를 먼저 완성하고 12월 1악장을 완성했다고 한다. 1악장은 꿈에서 친구가 나타나 휘파람을 불며 ‘안톤, 이 선율로 행운을 잡아봐요.’라고 들려준 멜로디로 작곡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1883년 1월 2악장의 스케치를 하고 4월 스코어를 완성했고 마지막 4악장은 9월에 완성했다고 한다. 완성 전이었던 1883년 2월 샬크와 초트만이 연탄으로 1악장과 스케르초를 연주하여 소개하였고 1884년 2월 샬크와 뢰베가 바그너 협회에서 이 작품의 전곡을 피아노 연탄으로 소개했다고 한다. 

이후 샬크는 작품의 초연을 알아 보았고 라이프치히에 가서 니키쉬를 만나 이 작품을 소개하고 함께 연탄으로 작품을 연주해 보았다고 한다. 니키쉬는 ‘베토벤 이후 최고의 교향곡이다.’라고 할 만큼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하고 1884년 라이프치히에서 이 작품을 지휘하여 초연하게 된다. 당시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몇몇 평론가 분들은 뢰베나 샬크의 손을 거치지 않고 니키쉬의 지휘로 초연이 되어 너무 다행이라고 하시기도 한다. 이후에 1885년 3월 헤르만 레비의 지휘로 뮌헨 무대에 올려졌고 5월 펠릭스 모틀의 지휘로 칼스루에에서 2악장이 연주되었으며 1886년 3월 한스 리히터가 지휘하는 빈필의 연주로 빈에서도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브루크너 교향곡 중에 처음으로 진정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혹자는 당시 작곡가의 나이가 60세였고 성공이 너무 늦게 찾아왔다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브루크너 자신도 그렇게 아쉬워했을 지 모르겠지만 혹시 이 작품마저 초연에서 청중의 외면을 받았다면 아마 브루크너는 이 작품을 포함한 이전 작품을 고치는데 여생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이 작품의 성공 덕에 브루크너의 이전 작품들이 새롭게 주목을 받았고 브루크너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남게 되었으며 성공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그 후 10년을 더 살면서 교향곡 8번, 9번 같은 걸작을 작곡하게 했다는 쪽으로 생각이 이어지게 된다. 

초연 장소가 빈이 아닌 라이프치히이기는 했지만 갑자기 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이 이전까지 브루크너의 교향곡에 대해 냉담했던 당시 청중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언뜻 보기에 여전히 복잡한 음악 양식이나 조금 텁텁할 수 있는 음향적 특성은 이전 교향곡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교향곡은 1악장부터 아름다운 선율로 시작하고 2악장에서는 특히 아름다움의 극치를 선사한다. 노래하는 현악기와 서정적인 목관악기가 돋보이고 이전 작품들에 비해 금관악기의 강한 음색이 절제되어 있어 이전 작품들에 비해 텁텁한 느낌이 덜하다. 게다가 브루크너 휴지라고 하는 단절적인 악상 전개도 1, 2악장에는 거의 없어 난해하다는 느낌을 별로 들지 않게 한다. 초연 당시만이 아니라 지금도 이 작품은 브루크너의 작품 중에 가장 사랑받고 있으며 특히 바그너의 죽음을 예감하고 악상을 떠올렸다는 아름다운 2악장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브루크너는 오페라 파르지팔의 초연을 보러 바이로이트에 가서 기력이 쇠한 바그너를 보고 그의 죽음을 예감하며 영감에 휩싸여 2악장을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바그너에 대한 존경으로 바그너에게 받은 것은 별로없이 음악 평론가와 브람스 진영으로부터 공격만 받았던 브루크너인데 바그너가 직접 뭔가를 주지는 않았지만 브루크너의 이름을 후대에 남길 수 있는 작품에 영감을 주기는 한 것 같다. 브루크너가 2악장을 작곡하던 1883년에 펠릭스 모틀에게 편지를 써서 “머지않아 그분이 돌아가실 거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을 때 아다지오의 단조 주제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때 브루크너가 떠올린 2악장의 주제 선율은 바그너가 니벨룽의 반지에서 신들의 황혼을 표현하면서 사용했던 바그너 튜바의 어두운 음색으로 표현되고 있다.

‘바그너 튜바’라는 낯선 악기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악기는 아니다. 모양은 작은 튜바처럼 생겼으나 악기 분류상으로는 호른의 일종으로 분류되어 보통은 호른 주자가 연주한다고 한다. 브루크너는 교향곡 7번에 처음으로 바그너 튜바를 편성한 이후 8번과 9번에 이 악기를 사용했으나 다른 관현악곡에 바그너 튜바가 나오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악기와 연주자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교향곡 7번의 초연 당시 이 곡의 바그너 튜바 파트는 호른 주자들이 연주했고 오늘날에도 바그너 튜바를 호른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있어 실연을 볼 때 ‘바그너 튜바를 구경하겠구나’라는 기대를 크게 가지면 실망할 수도 있다.

초연에서 성공을 거둔 덕에 여러 번의 개정 과정을 거치지는 않았지만 이 작품도 노박 판과 하스 판의 논쟁이 있다. 1885년 구트만에 의해 초판이 나왔고 2악장의 마지막 클라이맥스 부분에 심벌즈, 트라이앵글, 팀파니가 들어가 있다. 이 부분의 기보법이 브루크너의 평소 기보법과 달라 타인에 의한 가필 논란이 생겼고 하스 판과 노박 판이 달라지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게다가 타악기 부분에 누군가의 글씨로 ‘nicht gilt (무효)’라는 메모까지 남겨져 있어 더더욱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렇게만 보면 누군가의 가필로 보이지만 브루크너 자신이 작곡한 교향곡 8번의 아다지오 악장에서 클라이맥스 부분에 비슷한 타악기가 삽입되어 있어 단순한 가필로 볼 수 없게 하고 있다. 

타악기가 추가된 과정에 대해서는 원래 악보에는 타악기가 없었으나 바그너 협회에서 뢰베와 샬크가 연탄으로 연주하고 작곡가의 동의 하에 수정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초연 후에 니키쉬의 제안을 듣고 작곡가가 수정했다는 설도 있다. 1944년 하스가 하스 판을 낼 때는 이를 가필로 판단하여 타악기를 넣지 않았고 1954년 노박은 초판을 출판할 때 브루크너가 검토했을 것으로 생각하여 가필이라 할 지라도 적어도 브루크너의 동의를 얻은 것으로 보아 타악기를 넣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하스 판과 노박 판은 템포 지시나 바이올린의 옥타브 중복 등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감상하면서 찾아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게다가 음반에서는 표지나 설명에 하스판으로 연주했다고 표기되어 있는데도 2악장 클라이맥스에 일부 타악기를 사용한 경우도 있다. 반트나 틴트너의 경우 타악기를 모두 배제했지만 블롬슈테트의 경우 심벌즈, 트라이앵글만 빼고 팀파니는 사용하기도 했다. 취향에 따라 타악기가 활약해야 멋지다는 분들도 계시고 타악기가 빠져야 숭고한 정화감이 느껴진다는 분들도 계신다. 음반을 보았을 때는 노박 판을 채택한 경우가 하스 판을 채택한 경우보다 많고 하스 판을 채택해도 지휘자에 따라 팀파니는 사용하기도 하는 것을 보아서는 지휘자들의 선택은 대체로 타악기가 있는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 


1악장 (Allegro moderato) 1악장은 교향곡 4번에서처럼 현악기의 잔잔한 트레몰로를 배경으로 마치 안개를 뚫고 해가 떠오르듯이 혼과 첼로로 화음을 중후하게 펼치면서 제1주제가 제시된다. 이 주제가 아마 브루크너가 꿈에서 들었다는 주제일 것이고 초연에 성공을 거두었으니 꿈에서 친구에게 들은 말처럼 행운을 잡은 것 같다. 1주제는 조를 바꿔가며 전개가 되고 목관으로 반음계적인 2주제가 제시된다. 1주제가 서정적인 편이라 2주제는 오히려 조금은 바로크 느낌으로 들린다. 2주제는 점점 상승하여 클라이맥스를 만들어가고 파이프 오르간을 연상시키는 3주제가 나타난다. 발전부에서는 1주제, 2주제가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서정적으로 전개되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브루크너 개시는 있지만 브루크너 휴지는 없고 3개의 주제가 대비를 이룬다기 보다는 잘 어울리는 편이라 다른 작품보다 곡에 쉽게 빠져들게 만든다. 하스 판에서는 셈여림이나 템포 지시 중에 인쇄되어 있는 부분만 인정했으나 노박 판의 경우 메모로 남겨져 있는 손 글씨도 포함하여 하스 판보다는 nach und nach etwas schneller와 같은 지시문이 더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노박의 경우 이런 메모들이 브루크너의 최종적인 생각이라고 견해를 밝히고 있고 그 주장을 받아 들인다면 브루크너는 쉼표를 사용하는 대신 템포를 조금 탄력있게 가져가면서 장면 전환을 시도했던 것 같기도 하다.


2악장 (Sehr ferierlich und sehr langsam) 2악장은 연주시간이 보통 20분이 넘는 느리고 긴 악장이지만 브루크너가 남긴 아다지오 악장 가운데서도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바그너 튜바와 비올라로 장엄하게 연주되는 2악장의 제1주제는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듯한 아름다움이 아닌 절대 열세인 전력으로 외적에 맞서 나라를 구해야 하는 이순신의 심경처럼 어딘지 비장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이 선율이 넓은 음역에 걸쳐있고 단조와 장조가 끊임없이 교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제가 후반부로 가면 브루크너의 테 데움 중 제5곡 중 “non confundar in aeternum”의 선율로 이어진다. 종교곡의 선율인만큼 종교적인 분위기를 준다고 하는 데 테데움의 5곡은 조금 빠른 템포라 멜로디는 유사하나 느낌은 꽤 다르기도 하고 7번 교향곡이 테데움보다 먼저 완성이 되었으니 교향곡 7번이 테데움을 인용했다고 보는 것보다는 테데움에 교향곡 7번의 아이디어가 녹아들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2악장 후반에 이르면 한차례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때 노박 판의 경우 브루크너 교향곡에서는 드물게 나오는 심벌즈와 트라이앵글과 같은 타악기가 등장해 화려하고 극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10여년 전에 김문경 님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 말러와 브루크너 모두 바그너의 영향을 받았는데 같은 부모 밑에서 나온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두 형제처럼 말러의 음악에서는 타악기로 챙하는 화려한 모습이 잘 나온다면 브루크너에서는 무한 선율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더 많은 게 아닌가 했다. 결론은 2악장의 타악기는 브루크너의 취향이라기 보다는 바그너에 심취한 주변 사람들의 취향이 들어간 게 아닐까였던 것 같다.  


3악장 (Scherzo, Sehr schnell – etwas langsamer) 3악장 스케르초는 브루크너의 이전 스케르초와 비교했을 때 살짝 독특하다. 반복되는 멜로디가 중독성이 있다고 할까 아니면 조금 최면적으로 느껴진다. 스케르초이니 기본적으로 3박자이기는 하지만 독특한 기본 리듬이 깔려있기도 하다.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이 음형은 첫 박이 8분 음표 2개로 이루어졌고 그 다음 두 박은 각각 4분 음표 하나로 구성된다. 이런 리듬이 반복되어 느낌을 잘 살린 연주를 들으면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기도 하는데 클래식 명곡 명연주에서 최은규 님은 브루크너 교향곡 7번 3악장의 스케르초 리듬이 연주자 입장에서는 익숙한 리듬이 아니라 까다롭다고 하시기도 한다. 이런 독특한 리듬 위로 브루크너가 수탉의 울음 소리에서 따왔다고 하는 트럼펫의 중독성 있는 멜로디가 나오고 이를 클라리넷과 바이올린이 받으며 진행해 나간다. 몰입해서 들으면 어깨를 들썩이다가 트럼펫 멜로디에 따라 헤드 뱅잉도 하게 만든다. 트리오는 바이올린의 평화롭고 전원적인 멜로디로 등장한다. 이어 조바꿈을 이어가며 전개되다가 스케르초로 귀환한다. 


4악장 (Bewegt, doch nicth schnell) 브루크너 7번 교향곡의 4악장은 브루크너의 다른 교향곡처럼 1, 2, 3악장의 주제들이 종합되면서 조금은 복잡하게 전개가 된다. 이전 교향곡 들에 비해 길이가 짧고 조금 가벼운 느낌이 나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레코드 포럼에 연재한 글에서 이명재 님은 교향곡 7번이 4악장 없이 작곡 순서대로 2악장과 3악장의 순서가 바뀐 아다지오 악장으로 끝난 상태로 브루크너의 마지막 교향곡이 되었다면 아마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보다 유명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하셨다. 브루크너 교향곡의 4악장들은 복잡하고 20분이 넘기 쉬운데 이 작품은 후기 작품임에도 4악장의 길이가 12분 정도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고 은은한 팡파르가 울리며 끝나지만 거대하고 장대한 느낌이 드는 다른 피날레에 비해서는 조금 빈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휘자들의 고민이 들어가는 부분인 것 같고 템포를 떨어 뜨리며 곡을 장대하게 보이려 하기도 하고 반대로 가속을 붙이며 긴장감을 더해 보기도 하고 팡파르의 여음을 많이 주면서 장대한 느낌을 만들기도 하는데 감상자 입장에서는 연주를 끝까지 기대를 갖고 듣게 만드는 포인트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명재 님의 의견에 적극 동의하지는 않는 편이다. 현재의 4악장 구조에 이미 익숙해져서 그런지 아니면 4악장이 덜 피곤해서 이 작품을 감상 초기에 쉽게 들어서 그런지 빈약하다는 의견을 완전히 거부할 수는 없지만 4악장을 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스케르초는 4악장 앞에서 역할이 있는 것이고 비장한 아름다움을 갖는 2악장도 4악장 구도에서 자기 위치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이야기는 4악장을 미완성으로 남긴 교향곡 9번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해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