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2008/2/2) 정명훈 서울시향 말러 9번

romantiker74 2012. 10. 16. 12:27

 

 

이 연주회를 20자평으로 쓰면 ‘좀처럼 듣기 어려운 정말 좋은 연주를 들었다.’라고 쓰게 될 것 같다.

첫 곡은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4번. 이전에도 몇 번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던 권혁주씨가 독주를 맡아 기대가 되었다. 오케스트라의 도입부에서 서울 시향의 현이 조금 투박한 듯해서 모차르트와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셈여림의 표정이 꽤 정교하게 나타났고 절제된 연주를 들려주어 반주로는 별로 흠잡을 데가 없다는 쪽으로 판단이 기울어갔다. 역시 권혁주씨의 연주는 훌륭했다. 팽팽한 바이올린 소리도 좋았고 딱딱하지도 무르지도 않은 연주도 인상 깊었다. 모차르트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잔인한 작품이라 잔실수가 귀에 좀 들어오기는 했지만 카덴차의 훌륭함과 멋진 바이올린 소리가 ‘잘한다’라는 평가에 이의가 없게 만들었다.

드디어 기대했던 말러 교향곡 9번. 동경에서 정명훈 씨가 지휘하는 도쿄필의 말러 교향곡 3번과 4번을 들은 적이 있는 데 기대에 좀 못 미쳐서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다. 정명훈 도쿄필의 말러 9번은 면접을 보기 위해 일시 귀국하느라 놓쳤었고. 결과를 놓고 보면 나중에 일본 친구에게 ‘서울 시향이 도쿄필보다 내 귀에는 더 잘하는 것 같아.’라고 말하게 될 만큼 좋은 연주였다.

1악장의 시작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부분이고 감정을 넣은 쪽이든 담담하게 흐르는 쪽이든 현악기의 앙상블이 좋으면 가슴을 저미는 느낌을 받는 대목인데 서울시향의 연주는 산만하면서도 경직된 느낌을 주고 말았다. 다행히 1악장이 진행되면서 현악군은 안정을 찾아 갔고 기대 이상의 관악기 소리에 흐뭇해하게 되었다. 2악장부터 관악기를 중심으로 제법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그냥 실수없이 잘 연주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날카로운 액센트와 트릴이 말러 음악의 느낌을 잘 전달해 주었다. 일부 악기 솔로가 너무 도드라지거나 늘어지는 인상을 잠깐씩 받기도 했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놀라움의 절정은 3악장이었다. 정명훈 씨의 과감한 템포, 그럼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연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연주였다. 4악장 시작 부분이 1악장 시작 부분과 함께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루바토가 연주자마다 미묘하게 시간차를 보여 산만하게 들렸다. 그럼에도 정명훈 씨의 지휘는 확신에 차 있었고 정말 죽어가는 듯한 인상적인 피날레를 만들었다. 마지막 음이나고 잔향이 사라질 때까지 흐른 정적도 감동을 더해주었고. 기립박수를 치기엔 2%도 아니고 1% 부족했지만 정명훈 씨가 인사하면서 관객도 일으켜서 결국 기립박수를 치게 했다. 올해 정명훈 씨가 들려주겠다고 하는 ‘최고의 말러’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