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2006/5/18) 대전시향 말러 4번

romantiker74 2012. 10. 16. 12:24

 

대전시향 Masters series 4

Memorable Mahler and Prokofiev

 

2006년 5월 18일 오후 7시 30분

대전문화예술의 전당 아트홀

말러 교향곡 4번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지휘: 함신익

소프라노: 문혜원

피아노: 야콥 카스만

대전에서 처음 음악회장을 찾았다. 장소는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 서울의 예술의 전당을 패러디한 듯한 느낌의 공간이었다. 화강암의 질감이 나는 겉모양의 이미지도 꽤 비슷했고. 앞의 조경도 좋아서 겉모양은 나름대로 훌륭했다. 안에 들어가서 매표소나 매점, 음반가게등이 좀 촌스럽게 느껴지긴 했지만. 예당의 콘서트홀과 리사이틀 홀처럼 이곳도 아트홀과 앙상블홀이라는 대극장과 소극장이 함께 있는 구조였다. 아트홀의 내부는 오페라용 오케스트라 피트로 보이는 곳이 있었고 빨간 의자와 무대뒤의 흰색 음향판 검정색 나무판으로 마무리한 인테리어 덕에 서울의 예술의 전당보다는 조금 현대적인 느낌을 주었다.

첫곡은 말러의 교향곡 4번. 곡이 시작되고 방울소리가 좀 작고 청량한 느낌이 없었다. 현의 제 1주제에 처음 6음표중 뒤의 세음표를 거의 같은 길이로 또박또박 끊어서 연주했는 데 붓점을 넣은 것에 익숙해져인지 나름대로 신선하게 들렸다. 그러나 1악장의 핵심은 대위법이 잘 보이는 투명한 관현악인 데 건조한 소리가 나는 홀인데도 불구하고 조금 뭉개지게 들리는 걸 봐서는 현악기의 앙상블이 썩 좋지는 않아 보였다. 코데타에서 삑사리를 내기는 했지만 은은하고 매끈한 혼의 음색은 좋았고 목관 솔로들도 무난은 했다. 뒤에 앉은 여학생들이 음악회 내내 열심히 떠들고 자리가 떨어진 친구 자리까지 원정을 왔다 갔다 하기는 했지만 1악장이 끝나고 박수가 나오지 않은 건 훌륭했다. 음악회는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만 왔으면 좋겠는 데 그러면 열악한 클래식계가 더 열악해 지려는지. 학생들을 억지로 음악회장에 보내는 일은 이제 좀 그만해 주었으면 좋겠다. 하긴 나도 클래식 음악을 7-8년 접한 뒤에 이 곡을 듣고도 처음엔 싫어했으니 처음 듣는 학생들이 좋아해 주길 바라는 건 무리일 것 같다. 2악장에서 악장은 2대의 바이올린을 필요로 한다. 보통 옆에 걸어 좋을 때가 많은 데 이날 공연에서는 다음 프로그램에 쓸 피아노 의자를 악장 옆에 가져다 놓고 거기에 바이올린을 올려 놓았다. 악장 솔로가 중요한 데 왜 굳이 외국인을 악장으로 영입했는 지 이해가 안갈만큼 좋게 말해도 평범했다. 1악장부터 계속되온 파트별로 템포가 미묘하게 어그러져 불안해 보이는 느낌은 계속되었고. 3악장은 별 감정 없이 좋게 말하면 담백하고 나쁘게 말하면 밋밋하게 해석했다. 그렇게 감정을 넣지 않아도 현의 비브라토가 짜릿하거나 하면 충분히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악장이긴 한 데 담백하다기 보다는 재미없다는 쪽으로 판단이 기운 걸로 봐서는 연주가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좋게말하면 절제된 나쁘게 말하면 밋밋한 해석을 하다가 각 악장의 코다에 들어가는 부분에서 루바토를 구사해 템포를 떨어뜨리고 음량을 부풀려 포인트를 주는 해석이셨는 데 그게 3악장에서는 꽤 괜찮았다. 타악기가 작렬하면서 천국의 문이 열리는 부분이 제법 감동적이었다. 말러가 피라미드의 꼭대기라고 말하던 4악장. 일단 대전시향의 연주가 그때까지의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꽤 활기있는 연주를 들려줬다. 문혜원씨도 몇 해전 코심과 이곡을 했던 소프라노보다는 훨씬 뛰어난 가창을 들려주었고 정명훈씨가 이끌던 도쿄필의 말러 4번에 솔로로 나왔던 일본 성악가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문제는 성악가와 오케스트라가 좀 심하게 안 맞는 것이었는 데 같이 리허설 별로 안해보신 것 같았다. 게다가 4악장 중반에 아기가 울기 시작. 내가 지방에서 공연을 보고 있다는 현실을 다시 알려줬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프로코피에프의 피협 2번. 이날 프로그램은 특이하게 교향곡을 먼저하고 협주곡을 나중에 하도록 되어 있었다. 피아노 협연자는 어차피 저녁때까지 대전에 머물 것이고 문혜원씨는 서울로 올라가야 해서 이렇게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메인 디쉬뒤에 샐러드를 먹는 것 같은 느낌은 좀 들었다. 다 같은 음식이고 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고 우기면 할말은 없지만. 할 일도 좀 있었고 말러를 들으러 갔으니 일찍 연구소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던 걸 뉘우치게 만들만큼 좋기는 했다. 일단 피아니스트가 발군이었다. 프로코피에프의 재기 발랄한 느낌을 무리없게 소화해 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말러에서의 무기력함을 던지고 꽤 활기있게 해 주었고. 악장이 활을 긋는 모습이 이전과는 달라 보여서 '이 사람 혹시 러시아 사람인가? 프로코피에프가 말러보다 그렇게 좋나?'라는 생각마저 갖게 했다. 여전히 현이 날카로운 액센트를 내 주지 못하는 건 안타까웠지만 이런 음색과 연주력이면 이전에 공연했다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도 잘했을 것 같다는 느낌은 받았다. 협연자는 연주가 끝나고 앙콜로 차이콥스키의 4계중의 두곡을 들려주었는 데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러시아 레파토리는 참 잘 치는 피아니스트라는 인상을 받았다.

서울에서 공연을 봐도 연주홀의 음향이나 단체의 연주력이 안타까울 때가 많으니 주말 이외에 서울에서 공연을 보기 어려워진 지금에야 대전 예당의 음향이나 대전 시향의 연주력이 서울 이외의 왠만한 다른 곳의 상황보다는 뛰어나다는 걸 인정하고 응원해 줄 수 밖에는 없다. 아마도 다음달에 하는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이나 올해 말러 사이클로 잡혀있는 말러의 교향곡 6번을 연주할 때도 이곳을 다시 찾게 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