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2006/4/15) 박태영 청향의 쇼스타코비치 7번

romantiker74 2012. 10. 16. 12:23

2006년 4월 15일 오후 5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서울시 청소년 교향악단 연주회

프로코피에프 피아노협주곡 3번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피아노: 손열음

지휘: 박태영

올해 한국에서 하는 쇼스타코비치 연주회 중 가장 기대되는 연주는 이번달 28일에 기타엔코가 이끄는 KBS향의 쇼스타코비치 7번 연주였다. 불행히 연구소 팀의 엠티가 그날이어서 못가보게 되었던 차에 서울시 청소년 교향악단이 연주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일단 프로그램은 훌륭했다. 게다가 협연자가 손열음양이라니. 아직 고등학생인 것 같은 데 최근 애호가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고 일본에 있을 때도 정명훈씨가 불러서 도쿄필과 협연하기도 했는 데 나는 불행히 아직까지 연주를 들은 적이 없어서 호기심이 자극되었다. 서울시 청소년 교향악단은 제법 연주를 들어보았는 데특성상 늘 멤버가 바뀌는 악단이니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느낌으로는 프로 악단도 소화하기 어려운 작품이 좀 무리스러워 보였고 말러 1번 연주회로 꽤 좋은 평을 끌어내었던 과천청향과 달리 서울 청향이 연주한 말러 1번은 그다지 평이 좋지 않아 좀 망설여 지기도 했다.

하여간 서울에 올라왔으니 대전에서 누릴 수 없는 것들은 최대한 누리고 가야한다는 강렬한 의지와 아직 실연을 본 적이 없는 쇼스타코비치 7번에 대한 호기심으로 표를 끊고 들어갔다. 표의 구조는 R석, S석, A석이 30000원, 20000원, 10000원으로 되어 있는 형태. 그러나 예당과 달리 A석은 모두 3층. 3층 자리를 A석이라고 부르다니. 기왕 실연으로 쇼선생의 7번을 보려고 했다면 R석을 보자는 생각과 청향이 연주 못하면 본전생각날테니 A석을 보자는 생각이 팽팽히 맞서다가 결국 '세종이 예당에 비해 1층 소리는 별로지만 3층 소리는 괜찮더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는 생각을 되뇌이며 A석을 끊었다. 결과적으론 후회했는 데 내 옆에 수행평가 온 여학생 3명이 좀 심했었다. 앞에 아저씨랑 나까지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건만 연주 중에도 수다를 떠는 건 기본. 내 옆에 여학생은 아예 신발을 벗고 발을 의자위로 올리고 앉은 상태에서 열심히 전화기로 문자를 보내고 공연 후반부에는 아예 전화가 걸려온다. 황당하게 그 전화를 받는다. 다행히 '아직 안 끝났어'하고 끊기는 했지만. 게다가 앞에 자기한테 뭐라고 했던 아저씨 뒷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장난을 친다. 일선 중고교의 음악 선생님께 진지하게 부탁드려보고 싶다. '수행평가 좀 없애달라고.' R석은 초대권으로 오신 분들의 몸비틀기와 박수공세가 있고 A석은 수행평가 학생들의 테러가 있으니 S석을 끊어야 하는 것인지-_-;

하여간 연주로 돌아와서 일단 첫곡인 프로코피에프 피협 3번은 일단 훌륭했다. 소문대로 손열음양 정말 정교한 터치가 일품이었다. 작품이 가진 재기발랄한 느낌이 잘 전해지는 깔끔한 연주였는 데 투티에서 가끔 힘이 모자라서 피아노 소리가 오케스트라 소리에 좀 묻힌다는 느낌을 받았다. 힘을 좀 키우시면 정말 좋은 피아니스트가 될 것 같았다.

쉬는 시간 10분이 흐르고 드디어 기대하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지휘작 박태영씨가 일단 먼저 나왔다. 그리고 이 작품에 대해 간단히 해설을 했다. 재일교포신데 생각보다 한국말을 잘하신다는 느낌을 잠시 받았다가 말씀이 길게 진행되면서 그래도 재일교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악장 사이에는 박수 '하지' 마세요. 같은 일본식의 표현도 가끔 보이고. 이 작품은 70분 '있어요'라고 말하실 때는 '일본어에서 그런식으로 말을 하나? 아닌 것 같은 데.'라는 생각도 했지만. 하여간 그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악장 사이에 박수는 나왔다. 내 옆에 여학생은 악장 사이도 아닌 곡 중간에 박수를 쳤지만. 그리고 '아이고 쪽팔려'라는 멘트까지 스스로 하고. 이번 공연이 한국에서 2번째 공연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데 몇년 전엔가 키타엔코가 KBS와 했던 연주가 한국 초연이던 모양이다. 그 연주도 못가봤는 데 키타엔코와 KBS향의 쇼스타코비치 7번하고는 인연이 잘 안 닫는 것 같다. 사실은 5번보다 쇼스타코비치가 더 애착을 갖던 작품이라고 하시는 데. '진짜?' 해설로 봐서는 '스탈린이 인간을 파괴하고 히틀러가 건물을 파괴한 레닌그라드'라는 쇼스타코비치의 설명을 인용하고 각 악장의 표제를 이야기 해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설이기는 했지만 지휘자의 곡에 대한 견해도 어느정도 느낄 수는 있었다.

1악장이 시작되었다. 세종의 음향이 좀 건조해서 그런지 청향의 현이 조금 가늘다고 느껴졌다. 처음부터 스네어 드럼은 제법 도드라졌다. 초반에 앙상블이 좀 좋지 않았고 변주가 시작되고 금관이 처음 등장하는 부분에서 미스톤까지는 아니지만 너무 표정없이 음만 불어대는 느낌이 좀 났다. 변주 부분에서는 소리를 쌓아가는 부분이 라벨의 볼레로같은 점증적인 느낌을 잘 못 준 게 좀 안타까웠다. 후반에는 이전 코심과의 쇼스타코비치 10번에서처럼 타악기를 내세운 밸런스가 인상적이었고 특히 변주 후반부에서 코다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속도를 가속시키는 해석이 매우 인상깊었다. 물론 그 상황에서 앙상블을 흐뜨러 트리지 않은 연주력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고. 2악장은 4박자의 느낌이 나게 연주하여 어두운 행진곡같이 들렸다. 상대적으로 표현력이 좀 아쉽기도 했지만. 하지만 트리오는 제법 냉소적인 느낌이 잘 살아났다. 이 작품이 좀 벼락치기로 만들어져서 규모가 큰 블록버스터긴 하지만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가끔 있지만 8번을 예견하게 하는 2악장의 트리오는 어제 연주에서도 역시 쇼스타코비치라는 느낌을 받았다. 쇼스타코비치가 만든 훌륭한 스케르초라는 말에도 어느정도 동의할 수 있었고. 연주가 끝나고 목관 주자를 지휘자가 왜 가장 먼저 일으켜 세웠는 지도 이해가 갔다. 3악장이 가늘고 투명한 청향의 현악이 가장 많이 손해를 본 부분일 것 같다. 슬프로 처절한 느낌은 좀 무게있는 쪽이 더 호소력을 갖게 되다보니 아무래도 얄팍하게 들렸다. 처절한 아름다움에 동화되지 못하면 지루하게 느껴지기 쉬운 악장이기도 했고. 이 작품은 막판에 연주 잘하면 박수갈채를 끌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전체적으로는 좀 유약한 느낌이었던 금관진도 마지막엔 좀 스퍼트를 해 주었고 예상대로 타악기는 작렬해 주고 피날레는 역시 이 작품은 실연으로 들어야 한다는 느낌을 확실히 전해줬다. '이런 연주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면 말러 1번도 잘 했을 것 같은 데'라는 생각도 스쳤고. 프로 악단도 소화하기 힘든 작품이니 이만하면 훌륭하다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실연으로 이 작품을 접하고 나니 28일 KBS향 연주를 못가보는 게 다시한번 아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