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2006/2/14) 오우에 오사카필 브루크너 7번

romantiker74 2012. 10. 16. 12:20

 

 

오사카 필하모닉 43회 동경정기연주회

 

2006년 2월 14일 화요일 오후 7시

산토리홀, 메인홀

 

프로그램

 

다케미츠 토루 노스탤지어 - 안드레이 탈코프스키를 추억하며

 

브루크너 교향곡 7번

 

지휘: 大植 英次 (오우에 에이지)

바이올린: 長原 幸太 (나가하라 코타)

 

일본에서 브루크너 전문가로 이름을 날린 아사히나라는 지휘자가 있었다. 오사카필을 이끌고 전집을 비롯해 여러 버전의 브루크너 음반을 남기고 있다. 판본상의 문제도 있고 해서 한국에서는 그다지 알아주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일본에서는 대단히 명망이 있었던 듯 싶다. 나는 그가 오사카필을 이끌고 연주한 브루크너의 교향곡 1번과 말러의 교향곡 3번 녹음을 들어 본 적이 있는 데 브루크너 1번은 그다지 였고 말러 3번은 6악장이 퍽이나 감명깊었다. 2003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오사카필의 바톤을 이어받은 사람이 요즘 일본 지휘자 중 거의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오우에 에이지였다. 일본의 메이져 악단 중에서는 - 어디까지를 메이져로 봐야 하느냐는 조금 논란이 있겠지만 - 오사카필만이 일본인 지휘자를 음악감독으로 두고 있는 듯 했다. 동경의 주요 악단은 모두 외국인이 음악 감독을 맡고 있다. 도쿄필의 정명훈씨도 물론 일본 입장에선 외국인이고.

 

오우에씨는 히로시마 출신으로 대학까지 일본에서 공부를 한 듯 했다. 원래는 혼 주자 출신이었지만 지휘로 전향했고 오자와 세이지의 추천으로 탱글우드 페스티발에 번스타인의 조수로 참가하게 되는 것이 인연이 되어 세계무대로 진출을 한 지휘자인 듯 했다. 결정적으로 작년 동양인 최초로 바이로이트에 진출하여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해서 많이 주목을 받았다. 평은 불행히 그다지 좋은 것 같지 않고 내년에는 지휘자가 바뀌는 상황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일본에서는 꽤 영웅이 되어서 NHK에 '꿈은 이루어진다'쯤에 해당하는 다큐멘터리에도 등장해서 바이로이트 무대에 서 보는 게 꿈이었는 데 그걸 이루게 되었다는 내용도 방송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다큐멘터리에서 잠깐 그가 오사카필을 이끌고 말러 6번을 지휘하는 걸 봤는 데 리허설 하는 그의 모습은 영 신뢰가 안 갔지만 잠깐 흘러나오는 음악은 너무 훌륭해서 이틀 연속으로 산토리홀에 도장찍는 것이 뻘쭘해서 안 가본 걸 잠시 후회하게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 사람의 지휘를 보게 될 일이 흔치는 않을 것 같기도 했고 마침 좋아하는 브루크너 7번을 공연하길래 산토리홀로 향했다.

 

커플곡은 다케미츠 토루라는 사람의 노스탤지어라는 작품이었다. 소련에서 서방으로 망명한 영화감독 탈코프스키를 추억하며 만든 작품이라고 하고 현악 오케스트라에 솔로 바이올린이 들어가 있는 형태의 작품이었다. 10분 가량의 작품인 데 듣기 괴로운 작품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음렬주의 작품이라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는 작품이었다. 죽죽 늘어뜨리는 현의 느낌으로 추억이라는 개념을 표현한 것 같다. 바그너를 추억하며 작곡한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과 같은 개념으로 선택을 한 것 같기는 한데 작품에 공감하기엔 나의 내공이 부족한 듯 했다. 위에 스캔해서 올린 오우에 사인 받은 프로그램 안의 설명은 구조적으로도 완결하고 어쩌고 하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무리다.

 

드디어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 시작하는 현의 트레몰로가 정교하지 않았다. 이런 오사카필이 별로 연주력이 좋지 않은 단체인가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은 잠시 후 사라졌다. 아사히나와 수없이 브루크너를 연습한 저력이 나오는 혼을 중심으로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금관의 소리가 악단의 소리가 중요한 브루크너의 작품에서 시쳇말로 '먹어주고 들어갔다.' 사인받고 악수까지 하고 씹기는 조금 미안하지만 오우에씨 너무 곡에 자신의 존재감을 집어 넣으려는 것 같았다. 좋게 보면 정열적이고 감정이 풍부한 해석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느끼했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그의 지휘 폼처럼 곡이 작위적으로 들리는 부분이 많았다. 그렇게 몸을 비틀지 않아도 브루크너의 7번은 충분히 아름다운 데.

 

1악장은 감정이 꽤 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좋게 말하면 표정이 풍부한 해석이었다. 삑사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혼과 제법 고급스러운 소리를 낸 트럼펫이 훌륭했다. 1악장의 피날레 부분은 그런 소리 만으로도 감동적이었다.

 

2악장은 제법 빠르게 가져갔다. 브루크너 7번 2악장이 주는 깊은 정화감은 결국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오우에의 노림수는 쉼표 뒤에 이어지는 장면 전환에서 템포를 붙잡아 숨을 죽이게 하는 긴장감을 넣어 주는 것이었는 데 감동적이었다기 보다는 부자연스러웠다는 쪽으로 판단이 기울게 된다. 아무리 노박판을 사용해서 타악기들이 '여기 클라이맥스에요. 감동 좀 받아요.'라고 주장을 해도.

 

3악장도 스케르초는 빠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트리오는 느린 템포에 붓점에 힘을 주어 감정을 실었다. 대비를 살린 긴장감이 있는 연주라고 주장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엔 '브루크너 7번 3악장이 주는 최면적인 느낌은 어디로?'라는 의문이 계속 자리를 잡았다.

 

4악장의 해석도 2악장의 연장선상 장면전환의 경계를 분명히 강조하여 계속 따라 갈 수 있는 사람에게는 감정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긴장감을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복잡하고 산만하다는 느낌을 주는 연주였다. 그래도 피날레에서 금관의 코랄은 아사히나가 연주했던 말러 3번의 금관 코랄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소리로 듣는 이의 가슴에 호소했고 정교하고 예쁜 소리를 들려주는 편은 아니었지만 마지막까지 힘을 잃지 않는 현악군도 '오사카필이 스테미너는 좋구나'하는 느낌을 심어 주었다.

 

개성있는 연주이기는 했는 데 말러였다면 이런 정열적인? 해석에 정열적인 박수로 보답해 주었겠지만 브루크너였기에 기대했던 경건한 정화감이 좀 안타까웠다. 연주가 끝나니 아줌마 몇분이 뛰어나가 오우에씨한테 꽃다발을 건냈다. 오우에씨는 그걸 받더니 꽃을 그 안에서 한송이씩 꺼내서 여자 단원들한테 나눠 주다가 나중에 다발채로 한다발은 비올라 주자에게 한다발은 첼로 주자에게 줬다. 내가 봐도 적응이 안되는 상황이었는 데 뛰어나가서 꽃다발 건네 준 아줌마는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을까?

 

연주회장을 나와서 안내원을 따라 지하주차장에 가서 오우에씨 사인 받고 악수했다. 펜을 여러개 준비해서 사인을 받는 사람이 어디에 받냐에 따라 -그냥 종이일까, CD속지일까, 프로그램일까에 따라 - 어울리는 색의 펜으로 사인해주고 악수까지 해주는 그의 서비스 정신에는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