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2005/7/9) 도쿄심포니 말러 9번

romantiker74 2005. 10. 28. 19:53

 

도쿄심포니 527회 정기연주회
2005년 7월 9일 토요일 오후 6시
산토리홀

바하 챔발로 협주곡 3번
말러 교향곡 9번

지휘: 이이모리 노리치카
피아노: 코야마 미치이에

도쿄심포니는 동경예술극장에서 대지의 노래를 듣고 연주력 나름대로 훌륭하다는 것이 검증되어 말러 9번 연주도 들어보았다. 듣고난 소감은 전체적으로 좋은 연주였다 정도일까.

일단 커플곡은 바하의 챔발로 협주곡을 피아노판으로 연주한 것이었다. 물론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더 유명한 작품인 것 같다. 챔발로와 피아노는 건반악기지만 느낌은 참 다르다. 아무리 챔발로가 피아노의 전신이라고는 하지만. 피아노의 가장 큰 특징은 강약조절이 어느정도 자유로와서 다양한 표정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정을 그려낸 낭만주의 시대로 들어오면서 챔발로를 밀어내고 최고의 건반악기로 자리매김을 하게 하는 데. 챔발로 협주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때 연주자는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 같다. 악기가 피아노지만 정말 챔발로 분위기 나게 연주하거나 아니면 아예 이 작품이 챔발로를 위해 작곡되었다는 사실 쯤은 무시하고 피아노의 장점을 살려 표정을 불어넣는 선택도 있을 것 같다. 오늘 연주는 후자였는 데. 결과는 피아니스트에게 좀 미안하지만 실패인 것 같다. 바로크적인 정연한 느낌이 죽어서 좀 심하게 표현하면 김빠진 콜라같았다. 정말 또박또박 연주하던 장혜원 교수의 낙소스 음반이 내게 선입견을 만들어 버린 것인지도 모르지만.

오늘의 메인은 역시 말러 교향곡 9번. 자리는 1층 맨앞 거의 한가운데였다. 현악기의 섬세한 표현, 지휘자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는 건 좋은 데 무대를 꽉채운 악기 특히 타악기가 눈에 보이질 않아서 아무래도 시각적인 효과가 약한 면도 있었다. 젊은 지휘자였는 데 지휘폼은 매우 열정적이었고 땀을 비오듯 흘리고 두발이 동시에 포디엄에서 떨어지는 순간도 많아서 포디엄 부셔지는 줄 알았는 데 빚어내는 사운드는 제법 현대적이었다. 교향곡 9번보다 어쩌면 교향곡 7번에 더 어울리는 소리일 것 같을 정도로.
1악장의 시작은 비교적 담담했다. 담담한 해석만으로도 감동을 주기에는 현의 앙상블이 별로 정교하지는 않았다. 금관진도 잘하는 것 같고 밸런스를 잘 맞춰서 각 성부가 정확히 울린 것도 매우 감동적이었고 각 악기 솔로부분에서 솔로를 맡은 분들의 연주도 좋았고 그러면서도 다이나믹을 제법 크게 가져가서 순간순간은 감탄을 자아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어딘지 흐름을 따라가기엔 조금 어지럽게 들려서 먼저 간 형제를 그리는 애절함을 느끼기에는 좀 어려웠다.
2악장 랜틀러가 제법 특이했다. 랜틀러 자체는 조금 빠르게 가져가면서 트리오를 부각시키고 경과구나 파국을 다이나믹하게 몰고 가서 어떻게 보면 스케르초의 느낌 마저도 조금 보여주는 해석이었다.
3악장이 오늘 연주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정신없고 헝클어지기 쉬운 악장인데 잘 맞아떨어지는 연주가 제법 짜릿하게 느껴졌다. 특히 3악장이 끝나는 부분은 손에 약간의 땀을 쥐게 할 정도였다.
어쩌면 가장 아쉬운 부분은 4악장일것 같다. 우리의 KBS나 부천이 다른 악기 군은 몰라도 현악기는 정말 잘해서 그런지 NHK를 제외한 일본 악단들 현악기 앙상블은 별로 안 좋게 들릴 때가 많다. 비브라토, 글리산도같은 잔재주를 주는 부분이나 마지막에 약음기를 끼우고 들려주는 죽어가는 듯한 느낌은 훌륭했지만 4악장이 시작되면서 1, 2 바이올린이 그리고 그 안에서도 미묘하게 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은 이어지는 첼로의 멜로디에 감동을 받으면서도 4악장 내내 '9번은 역시 현악군이 중요해'라는 느낌을 계속 갖게 했다. 마지막 약음이 잦아들고 나온 1분정도의 정적은 부천필의 연주로 접했을 때의 감동을 다시 불러일으켜 주었고.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심금을 울려주는 말러 9번을 기대했다면 어딘지 허전한 구석이 있지만 숲보다 나무에 조금 주목을 해 보면 이 작품 정말 정교하게 작곡 잘했다는 인상을 받게 해줄 수 있는 연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