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2005/3/19) 살론 도쿄도향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8번

romantiker74 2005. 4. 7. 20:49


 

 

2005년 3월 19일 (토) 오후 2시
동경예술극장
지휘: 스티븐 살론
동경도 교향악단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8번

원래 프로그램에는 음악극 마스코브 체리욤스키 조곡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동경도향의 상임 지휘자인 게리 베르티니가 급히 세상을 떠나서 게르 베르티니가 지휘하기로 했던 24일 연주회를 스티븐 살론이 대신 지휘하게 되면서 오늘 연주 프로그램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8번만이 남게 되었다. 표값의 반을 계좌로 넣어 주겠다고 하기는 하지만 프로그램에서 빠진 작품도 호기심이 가고 애써 공연장을 찾아서 반쪽밖에 공연을 못 보는 아쉬움이 좀 있었다. 물론 더 아쉬운 부분은 게리 베르티니가 지휘하는 동경도향의 말러를 들을 수 없다는 점이겠지만.
동경예술 극장은 이전에도 느꼈지만 천정이 높고 잔향이 많아서 교회에서 음악을 듣는 느낌을 주는 홀이다. 교회음악을 연주하면 정말 좋은 느낌을 줄 것 같다.
솔직히 정교한 관현악이 어느정도 돋보이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8번과는 그다지 궁합이 맞지 않는 느낌이기는 했다. 들었을 때의 느낌은 다이나믹이 큰 연주여서 그런지 멋지게 들리는 면이 많아서 그리 나쁘지 않았다.
1악장은 유명한 교향곡 5번의 1악장과 여러모로 비슷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인 구성도 그렇고 세부적으로도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저음현을 바탕으로 한 어두운 느낌의 주제로 시작해서 바이올린이 날카로운 느낌으로 긴장을 주고 그 긴장을 뚫고 스네어 드럼의 리듬에 맞춘 금관으로 강렬한 행진곡이 흘러나오는. 교향곡 8번의 행진곡은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에서 따왔다. 다이나믹을 크게 잡아 강렬한 표현을 하는 지휘어서 잔향이 큰 홀에서 작렬하는 느낌을 잘 전달 받을 수 있었다. 금관이 군데군데 미묘한 삑을 냈는 데 홀의 특성상 잘 가려지는 것 같았다. 물론 삑을 내도 홀의 잔향으로 커버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삑을 낸 금관 주자의 기술이겠지만. 현의 트레몰로를 배경으로 한 애절한 멜로디로 아픔을 표현하는 대목도 교향곡 5번과 8번의 1악장의 공통분모 중 하나인 데 교향곡 8번에서는 잉글리쉬 호른이 애절한 멜로디를 들려준다. 쇼스타코비치는 이래서 어려운 것 같다. 너무 감정이 많이 들어가도 안 들어가도 느낌이 살지 않으니. 오늘의 연주는 좀 밋밋한 쪽에 가까웠다.
2악장도 붓점리듬의 현이 끌고 나가서 그런지 교향곡 5번의 2악장과 어딘지 유사한 느낌을 준다. 다이나믹한 느낌이 좋았고 정말 쇼스타코비치 작곡 잘한다는 인상을 각인시켜주었다. 풍부한 잔향이 2악장에서는 조금 양날의 칼이 된 것 같다. 현의 날카로운 표현을 좀 먹어서 전체적인 느낌은 이전에 KBS향의 연주로 이 작품을 들었을 때가 더 좋지 않았냐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러나 현이 연주하고 같은 주제를 금관이 이어 나갈때 전혀 끊기는 느낌없이 자연스러운 인상을 받은 부분은 잔향이 도와주지 않았나 싶다.
3악장 초반은 현의 섬세한 표현이 중요하니 역시 잔향이 많은 홀에서는 좀 불리하다. 하지만 3악장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트럼펫 솔로는 정말 멋졌다. 짱짱하게 울리는 타악기도 멋졌고 특히 스네어 드럼을 친 여성 연주자가 훌륭해 보였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의 전체적인 특징이기도 하지만 교향곡 8번은 특히 악기별 솔로가 많아서 실내악적 소리에서 강렬한 투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져간다. 물론 각 솔로악기 주자의 기량이 매우 중요하다. 오늘 연주는 그 부분이 잘 된 것 같다. 어쩌면 관객 전체에게 표값의 반을 환불을 해 주더라도 한곡을 해도 제대로 하자는 마음 가짐으로 열심히 연습을 했는 지도 모르겠다. 현이 중심이된 파사칼리아의 4악장은 오늘 연주 중에서는 가장 깊은 인상을 못받은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다이나믹의 폭을 넓게 잡은 해석은 5악장에서는 확실히 빛을 발한다. 어쩌면 롤러 코스터를 타는 듯한 긴장감의 완급이 이어지다가 정말 죽어가듯 모렌도로 끝나는 순간. 이전 KBS향의 연주에서는 수행평가하는 아이들 때문에 정말 괴로웠는 데 오늘은 지휘자가 손을 내릴 때까지의 1분 정도의 정적을 그대로 지켜주는 관객들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물론 가슴깊이 짠한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떠나간 사람이 되었지만 게리 베르티니가 잘 키웠는 지 도쿄 도향의 연주력은 물론 서울 시향보다 훌륭했다. 갑자기 원래는 들을 계획이 없었던 다음달에 잡힌 와카스기 지휘의 쇤베르크의 바르샤바의 생존자가 듣고 싶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물론 그에 앞서 프로그램이 짧아져서 좀 허하다는 느낌을 갖고 연주회장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