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2005/3/15) 인발 베를린 심포니 말러 5번

romantiker74 2005. 4. 7. 20:47


 

베를린 심포니 공연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말러 교향곡 5번

지휘: 엘리야후 인발
바이올린: 川久保貽紀
2005년 3월 15일 화요일 저녁 7시
동경 산토리홀 대홀

지난 1월 정명훈 도쿄필의 말러 3번 이후에 나를 유혹하는 음악회가 2개가 있었다. 가장 보고 싶었던 음악회는 2월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가 지휘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공연이었다. 프로그램이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이라 더더욱 자극했는데 불행히 내가 표를 사려고 했을 때는 이미 표가 매진인 상태였다.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은 4월 스타니슬라브 스크로바체프스키의 지휘로 요미우리 일향의 연주로 듣기로 하고 그 다음으로 보고 싶었던 인발이 이끄는 베를린 심포니의 말러 교향곡을 예매하기로 했다. 동경에서 2번의 공연을 하는 데 교향곡 9번 공연은 학회랑 겹쳐서 들을 수가 없었고 교향곡 5번 공연을 듣게 되었다.
커플곡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가볍게 생각되기 쉽지만 의외로 좋은 연주를 접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특히 3악장이 생각보다는 연주자와 반주가 틀어지기 쉬운 곡이다. 오늘 연주는 3악장이 정말 훌륭했다. 1악장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치고는 조금 감정이 많이 들어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이올린 주자의 역량이 뛰어난 건 인정하지만 풍부한 감정은 조금더 정열적인 작품을 할 때 넣어 주었으면. 카덴차 부분은 심하게 늘어뜨려서 느끼하다는 인상마저 받기는 했다. 오히려 2악장은 담담했다. 승부는 역시 3악장인데 훌륭했다. 이렇게 앙상블이 뛰어난 오케스트라도 말러를 연주하다보면 삑사리를 내겠지 하는 생각도 잠시 흘러갔고.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앵콜곡을 많이 하는 데 바이올린 주자는 그냥 들어갔다.
휴식 후에 드디어 기대했던 말러 교향곡 5번. 말러 교향곡 5번은 제법 실연으로 접해봤지만 정말 훌륭한 연주를 접한 적은 아직 없었다. 불행히 부천필의 공연을 한국-이탈리아 월드컵 8강전을 보느라 놓쳤으니. 트럼펫 솔로와 함께 1악장이 시작되었다. 트럼펫 솔로하는 분 정말 잘한다. 이전에 코리아 심포니의 연주 때 안희찬씨의 연주가 인상깊었는 데 너무 쉽게 불어주셔서 놀라웠다. 장례의 발걸음은 템포는 묵직하게 표현했지만 붓점을 강하게 넣거나 하지는 않아서 처절하기 보다는 그냥 묵직한 느낌을 주었다. 전체적으로 악기간 균형이 매우 좋아서 여러 성부의 소리가 잘 들리게 되었고 산토리 홀의 음향도 세부적인 부분도 잘 울려주어서 공연내내 흐뭇했다. 저음현이 조금 약한 것 같기도 했고 타악기가 좀 많이 강조된 듯한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좋은 밸런스의 말러 5번 실연은 처음인지라 뿌듯하게 들었다. 타악기 소리도 밸런스를 깬다기 보다는 제법 신선하게 들릴 때가 많았다. 특히 스네어 드럼은 정말 군대의 행진같은 느낌을 주었다. 바로 이어서 2악장이 연결되고 탱고의 리듬이 흐를 때 템포를 빠르게 잡는 해석이 기억에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다이내믹은 큰 폭으로 가져가지 않았지만 템포의 변화로 긴장감을 유지하는 해석이었다. 자칫하면 인위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 해석인 데 역시 전문가 답게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2악장에서는 트럼펫 주자뿐 아니라 악장도 참 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3악장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과장된 표현을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3악장의 왈츠에서는 붓점도 제법 넣어서 잘못하면 지루해지기 쉬운 악장에 활기를 주었다. 물론 더 인상적인 대목은 어쩌면 트리오에서 보여준 소리였을 지 모르겠다. 이전에 인발이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를 이끌고 녹음한 말러의 교향곡들이 마치 말러의 교향곡 악보를 롤랜드에서 나온 신디사이저에 놓고 틀어 놓은 것 같다는 평을 본 적이 있는 데 3악장 트리오에서 관악기의 에코를 이용한 소리가 이전에 들었던 그런 느낌을 전해 주었다. 물론 오디오로 들을 때보다 훨씬 신기하게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신비하게 들렸다.
4악장은 현악군의 기량과 현악군을 지휘자가 얼마나 잘 통제하냐에 따라서 결판이 나는 악장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름답지만 정말 감동적인 연주를 만들기는 만만치 않은. 오늘 연주는 나름대로 깔끔했지만 짙은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5악장의 모습이 5악장이 팝업이 되듯 느껴지기 보다는 4악장에 파묻힌 형태였는 데 물론 5악장을 미리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해석을 보여준다면 팝업을 하는 형태가 더 설득력이 있겠지만 이 곡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 곡을 들려줄 때는 이렇게 그냥 묻어두는 해석이 더 맞는 흐름일 지 모르겠다. 하지만 느린 4악장과 빠른 5악장이 3부로 묶이기 위해서는 5악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5악장의 연주가 결국 브라보와 기립박수로 이어질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대목이 될 것이다. 오늘의 연주는 기쁘게도 브라보를 외쳐줄만큼 뛰어났다. 성부를 잘 보여주는 음량 배분이 확실히 푸가에서는 성공을 거두는 것 같다. 4악장 주제가 처음 나올 때는 템포를 떨어뜨려 4악장에서 따온 주제임을 확인시켜 주고 다음에 나올 때는 5악장의 모습대로 가져갔다. 클라이맥스와 마지막 돌진은 정말 빠르게 가져갔는 데 금관의 코랄에도 뭉치치 않고 자기 소리를 정확히 내는 현이 오히려 더욱 놀라웠다. 모든 걸 휙 집어던지는 듯한 말러의 유머를 느끼기 위해서는 코다 직전에 템포를 조금 잡아두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런 해석은 많이 봤으니 그 순간까지 전부 밀어붙이는 오늘의 연주도 나름대로 재미있게 들었다.
배가 많이 나온 인발은 듣던대로 비디오가 별로 좋은 지휘자는 아니었다. 그래도 오늘의 연주를 듣고 인발의 팬이 되어보기로 했으니 연주는 정말 좋았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