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2004/6/15) 오자와 빈 슈타츠 오퍼 바그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romantiker74 2005. 4. 7. 20:41

 

(사진은 빈의 슈타츠오퍼 앞에서 찍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볼 때는 잽싸게 줄서서 표사고 그 다음엔 가방을 맡겨놓아서 사진을 찍을 틈이 없었고 사진은 나중에 찍은 것이다. 그날은 날이 참 좋았는 데 사진을 찍을 때는 장대비가 와서. 그래도 비오는 슈타츠 오퍼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하고는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한국에서 예약하려고 나름대로 시도했는 데 이상하게 에러가 떠서 예약을 못했다. 어찌되었든 우리나라에서 매우 보기힘든 오페라이고 빈에 왔으면 슈타츠 오퍼에서 오페라를 봐야한다고 열심히 주장해서 학회에 참석한 후배들을 데리고 화요일도 학회 일정이 끝나자마자 칼스광장에 갔다. 한국에서 봤을 때는 표가 좀 있었는 데 월요일에 보니 표는 이미 매진이었다. 당일 입석표는 정식 매표창구에서는 안 팔고 옆으로 돌아가 있는 Abend Kassa라는 곳에서 판다. 그곳 입구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는 데 비가 떨어지니 안쪽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낚시 의자를 들고와서 진을 치고 계신 분들도 있었다. 공연 2시간쯤 전에 왔는 데 공연 1시간 전이 되니 표를 팔기 시작했다. 기다리면서 이 오페라를 구경온 한국 배낭족들을 만나서 열심히 오페라의 줄거리를 설명해주고 표를 사서 나왔다. 이게 실수이긴 했다. 표에 번호가 찍혀있고 입석도 지정좌석이라는 소리를 어디서 들어서 안심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는 데 지정좌석이 아니고 입석에도 자막이 나온 액정이 설치되어 있는 데 그 받침대에 손수건 내지는 뭔가로 자리표시를 해 놓게 되어 있었다. 저녁을 먹고 와서 보니 그런 자리가 모두 찬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 자리로 들어가는 가운데 계단에 서서 봤는 데 자막에 별 미련이 없었던 터라 답답하지도 않고 정면도 잘 보이고 나름대로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3.5유로에 이 작품을 감상했으니 가격대 성능비로는 최고인 것 같다.
일단 그런 것들을 뒤로하고 빈 슈타츠오퍼에 들어서는 순간 또 감동이 밀려왔다. 사진으로도 좀 봤고 클림트의 그림으로도 봤던 그 화면이 내 앞에 펼쳐졌으니.
이날 연출에 가장 큰 특징은 아마 스크린일 것이다. 반투명 스크린을 이용해서 그 뒤에 뭔가가 비치게 해서 많은 것들을 연출했다. 막이 오르고 서곡이 흐르고 폭풍우 치는 바다가 그려진 스크린이 있고 그 뒤로 검은 망또를 쓴 유령으로 분장한 합창단원이 뒤에서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가 사라지면서 서곡이 끝났다.
전날 브루크너 교향곡 5번 연주로 무리를 했는 지 빈필의 앙상블이 이렇게 안 좋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단 알게 되었다. 특히 금관이 자주 뭉개졌는 데 물론 우리나라 악단이 이만큼 연주했으면 물론 열광의 박수를 쳐 주었겠지만 천하의 빈필이라 좀 실망스러웠다. 지휘는 오자와가 맡았는 데 헤어스타일이나 지휘하는 모습은 한국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무대에는 나무로된 마루바닥이 있고 양쪽으로 뱃머리 모양의 나무 구조물이 있는 세트가 기본이 되어 장면에 따라 배의 내부로도 집의 거실로도 사용하도록 해 놓았다. 일단은 배의 안이고 선원과 키잡이, 선장이 있다. 선원들은 생선시장 아저씨들이 입는 고무바지와 장화를 신고 있고 달란트는 제복 밑에 흰 와이셔츠와 노란색 타이를 받쳐 입고 있었다. 키잡이는 파란색 작업복 차림으로 나왔다. 키잡이는 John Dickie라는 사람이 맡았는 데 조금 성량이 작고 바이브레이션이 좀 들어가서 썩 좋은 캐스팅이라고 느껴지진 않았다. 달란트는 넬손의 바이로이트 영상물에서도 달란트 역을 맡아 등장하는 Matti Salminen이 나오는 데 정말 터프하면서도 돈을 밝히는 모습이 딱 달란트같은 느낌을 주었다. 키잡이가 잠이 들고 네덜란드인 배가 나타나는 데 무대 뒤에 붉은 스크린을 조명해서 만들었는 데 도저히 스크린에 조명만 해서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힘들만큼 그럴듯해서 매우 신기했다. 네덜란드인 선장은 한쪽눈에 붉은 화장을 하고 나왔고 Franz Grundheber라는 가수가 불렀다. 육중한 소리를 들려주었는 데 노래 잘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네덜란드인과 달란트의 고전적인 느낌의 2중창이 흐르고 보물을 전해 주는 장면은 갑판 아래서 유령의 손이 나와서 금괴를 하나씩 갑판에 올려 놓는 것으로 연출했다.
이번 공연도 바그너의 지시대로 논스톱으로 공연했다. 갑판의 바닥은 그대로 젠타의 집의 거실이 되었다. 마을 아가씨들은 모두 파스텔 톤의 원피스를 입고 있고 마리는 회색의 투피스를 그리고 젠타는 흰색의 원피스를 입고 등장했다. 실타래는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상태고 마을 아가씨들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잡아서 돌리도록 되어 있었다. 이날 공연에서 가장 돋보인 역은 역시 젠타였다. Nina Stemme라는 가수가 불렀는 데 일단 젠타의 발라드는 소프라노 치곤 조금 공명점이 낮은 깊고 부드러운 톤으로 불렀다. 에릭은 Torsten Kerl이라는 가수가 불렀는 데 오히려 키잡이랑 바꾸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사낭꾼이라는 캐릭터에 맞게 가죽점퍼 차림에 말총머리를 하고 등장했다. 젠타와 에릭의 노래에 이어 달란트와 네덜란드인이 등장했다. 네덜란드인의 초상화는 집의 문 위에 여러장 걸려 있는 것으로 표현했다. 네덜란드인을 보고 놀라는 젠타의 모습은 조명의 변화로 표현했다. 무대의 모든 조명을 끄고 무대 양 옆의 조명만 켜서 갑자기 괴기스러운 분위기로 바꾸었다. 이번에 네덜란드인을 보면서 가장 감동적으로 느낀 부분은 이 오페라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작품이라는 말이 와닿게 된 것인 데 특히 네덜란드인과 젠타의 장면이 가장 그런 느낌을 많이 주었다. 밝은 백색광으로 표시된 현실과 어두운 단색광으로 상징한 환상의 세계가 정말 적절하게 잘 표현된 것 같았다.
드디어 기대했던 선원의 합창장면이 나왔다. 매우 활기있는 모습이었고 머리가 쭈뼛 설만큼 짜릿함이 느껴졌다. 선원들은 이전의 고무바지 위에 흰 와이셔츠와 제복 자켓을 입고 단정하게 등장하지만 점점 노래를 부르면서 옷을 집어던지는 것으로 연출했다. 육교모양의 노르웨이 배와 네덜란드 유령선이 등장하고 노르웨이 배에만 조명을 했다가 네덜란드 인 선원을 부르는 대목에서는 모든 조명을 끄는 식으로 연출했다. 대본상에 없는 에릭이 등장해서 선원들의 파티에서 왕따당하는 것으로 연출했고 키잡이도 등장해서 Steuermann이라는 가사가 나올 때마다 띄우는 것으로 연출했다. 유령선의 유령은 배가 사라지면서 좌우 구도에서 앞뒤 구도로 바뀌면서 검은 망토를 쓰고 등장했다. 젠타가 등장하자 검은 망토를 쓴 채로 모두 바닥에 널부러지고 다시 조명은 백색광으로 바뀌고 에릭이 등장해 카바티나를 불렀다. 네덜란드인 선장이 그 장면을 목격하고 낙담하자 널부러진 유령이 다시 되살아 났다. 마지막 장면은 젠타가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분신 자살을 하여 무대 아래로 사라지고 에릭이 절규하는 것으로 연출했다. 표 사려고 기다릴 때 우리나라 배낭족들한테 젠타가 투신 자살하고 네덜란드인하고 같이 승천한다고 주장했다가 그것만 기다렸다는 그 분들한테 오페라 끝나고 욕먹었다.
어쨌든 이 작품을 실연으로 본 것만으로도 매우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이 작품을 이야기 하게 된다면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멋진 작품이라고 소개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