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2004/6/4) 정치용 KBS향 말러 '죽은아이를 기리는 노래'

romantiker74 2005. 4. 7. 20:34


2004. 6. 4 (금)
오후 7시 30분
KBS홀

말러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포레 레퀴엠

소프라노 김영미
바리톤 김동섭
지휘 정치용
국립합창단
KBS교향악단

일단 프로그램이 너무 맘에 들어 KBS홀을 찾았다. 현충일 특집이라서 그런지 재향 군인회나 비슷한 단체들의 단체 관람이 많았다. 무슨 보이스카웃 같아보이는 유니폼을 입고오신 할아버지들이 많이 계셨다. 꼭 이래야만 공영방송의 공영성을 살릴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자리는 맨 앞에서 2번째 한가운데로 잡았는 데 내 자리 바로 앞에 방송용 카메라가 놓였다. 시야를 가리기도 하고 아무래도 번잡스러워서 가슴이 아팠는 데 음악을 할 때 생각보다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기계도 별 소리가 안났고 촬영 콘티 같은 걸 부스럭 거리지도 않았다.

첫곡은 말러의 죽은 아이를 기리는 노래였다. 매우 젊은 성악가가 나와서 노래를 불렀는 데 일단 독어 딕션이 자연스러운 건 상당히 맘에 들었다. 프로필을 보니 뮌헨에서 공부하신 것 같다. 하지만 큰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시기엔 성량이 좀 부족한 듯 했다. 목소리가 반주에 묻히는 일이 좀 자주 있었다. 1곡과 3곡에서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이 좋지 않았는 데 리허설이 좀 부족했던 것 같다. 뿔피리를 넘어서서 중기 교향곡으로 가는 말러의 느낌이 잘 드러났고 교향곡 5, 6번과의 연관성, 말러의 미묘한 느낌등을 잘 전달 받을 수 있었다. 각 악기의 솔로도 잘 부각되었고 연주도 훌륭했다. 2곡 끝나고 박수가 나온 건 좀 아쉬웠고 정치용 지휘자도 서현석 씨한테 배웠는 지 중간에 박수가 나오면 객석에 손을 흔들어 박수를 멈추도록 하셨다.

휴식 후에 말러보다 어쩌면 더 기대했을 지 모르는 포레의 레퀴엠을 들었다. 입당송에서 서주에 이어 테너 합창이 나오는 순간부터 감동이 밀려온다. 내가 절대 저런 소리를 못 내서 그런지 고운 결로 테너 합창이 울리면 일단 나는 감동을 받는 것 같다. 봉헌문 중간에 아니트라의 춤으로 핸드폰 벨소리 울리게 한 분 정말 미웠다. 오랫동안 끄지도 않고. 가장 좋아하는 상투스도 상당히 좋았다. 바리톤이나 소프라노 솔로부분은 제법 템포를 늦추기도 하셨지만 합창으로만 이루어진 부분은 비교적 빠른 템포로 가볍게 연주하는 해석을 보여 주었고 상투스도 그랬다. 높은 곳에서의 호산나 부분에서 금관이 좀 밋밋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실연으로 이 곡을 듣는 것 만으로도 감동이 밀려 온다. 피에 예수는 소프라노에 따라 성패가 갈릴텐데 어제 소프라노는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공명점이 높은 건 참 맘에 드는 데 약간 바이브레이션이 들어가서 성스러운 느낌을 조금 깎아 먹는 것 같았다. 아뉴스 데이에서도 레퀴엠이 다시 회상되는 부분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졌는 데 매우 가슴이 아팠다. 드디어 바리톤의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리베라메를 들었다. 역시 오케스트라 편성이 줄어드니 바리톤의 노래를 잘 감상할 수 있었다. 여전히 일부분에서 오케스트라와 가수의 호흡이 좋지 않다는 인상을 받기는 했다. 정말 맑은 소리가 요구되는 In Paradisum은 소프라노 합창부가 좀 아쉬웠다. 아무래도 약간 탁한 느낌을 받았다. 숲보다는 나무에 집착하는 나의 감상 형태로 볼 때는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포레의 레퀴엠이었다. 앙상블도 좋고 합창부분은 약간 빠른 템포로 담백하게 클라이맥스에서는 현대 오케스트라 답게 극적 표정을 조금 넣어 주고 솔로이스트의 노래 부분은 템포에 탄력을 좀 주는 해석이었으니. 하지만 숲을 중시하는 분들에겐 통일성이 좀 부족한 연주였을 지 모르겠다. 역시 어설픈 앵콜은 없는 게 더 좋은가보다. 프로그램이 짧았지만 앵콜 없이 끝났는 데 In Paradisum의 느낌을 같고 연주회장을 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