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2004/6/14) 아르농쿠르 빈필 브루크너 5번

romantiker74 2005. 4. 7. 20:39

 

(사진은 빈의 무직페라인 잘의 모습이다. 모양이야 무직페라인 잘 로고에 나와 있어서 자주 보았는 데 막상 실물을 보니 짙은 핑크색으로 칠해놓은 모습이 조금 촌스럽게 느껴졌다.)

월요일의 학회 일정이 끝나자마자 무직페라인 잘이 있는 칼스광장으로 열심히 갔다. 무직페라인 잘 사무실로 가서 오늘 표를 구하려고 하니까 당일표는 뒤쪽 케른트너 링에 있는 빈필 사무실에 가서 구하라고 한다. 그래서 거기에서는 20일 공연표만 예매하고 빈필 사무실로 갔다. 빈필 사무실에 들어가서 표를 구해봤다. 시야에 제한이 있는 좌석하고 입석이 있는 데 뭘로 할꺼냐고 물어봐서 좌석으로 했다. 좌석은 10유로고 입석은 5유로인데 둘다 너무 싸서 좀 불안하긴 했다. 표를 받고 보니 Orgel Balkon라고 되어 있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짐을 갖다 두고 와서 드디어 무직페라인 잘에 들어섰다. 음악회 전 무직페라인 잘의 로비와 그 앞의 카페는 뭔가 상류사회?의 분위기가 좀 흐르는 것 같았다. 홀에 들어서고 나서는 정말 감격했다. 화면에서만 보던 황금빛으로 장식된 실내가 눈에 들어오고 기둥에 조각한 여신의 모습, 황금색 프레임으로 둘러싸여 천장에 그려진 천장화들, 화려한 샹들리에, 무슨 궁전의 내부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내 자리는 불행히도 무직 페라인 잘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 옆 자리였다. 악단은 안보이고 객석만 보인다. 연주회장 문이 닫히자 내 옆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무대 옆쪽에 빈 자리로 진출하셨다. 나도 따라서 그쪽으로 갔다. 결국 공연은 2층 무대옆 자리에서 빈필을 옆에서 보면서 들었다.
박수를 받으며 아르농쿠르가 들어왔다. 칠순을 넘겼지만 정정한 모습이었다. 현의 트레몰로로 1악장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금관의 팡파르에 이어 1주제가 나온다. 일단 이런 이상한 자리에 앉아도 음향이 거의 왜곡없이 들리는 게 놀라웠다. 음향은 부드러우면서도 뭉개지지 않아 섬세한 표현이 잘 들리는 놀라운 소리였다. 1악장은 나름대로 규범적이 연주였다. 물론 빈필의 연주는 훌륭했다. 아르농쿠르의 지휘하는 모습은 생각보다 매우 열정적이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되고 지시를 내리는 파트를 날카롭게 바라보며 지휘봉없이 손가락으로 지시를 하는 모습이 매우 압도적이었다.
2악장부터 조금 특이한 해석을 들을 수 있었다. 2악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첼로의 코랄을 상당히 빠르게 연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를 음색과 템포에서 매우 강력하게 대비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장 개성있는 느낌을 보여준 악장은 역시 4악장이었다. 2주제의 본 멜로디는 빠르게 연주하지만 에코부분은 느리게 연주하여 에코가 본 멜로디를 단순이 따라하는 게 아니라 정말 에코처럼 울려퍼지는 느낌을 연출했고 피날레는 템포를 떨어뜨리면서 음향을 부풀려 장대하게 마무리했다. 곡이 끝나고 1분 정도의 정적이 흐르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래 기억에 남을 연주회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