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2005/1/8) 정명훈 도쿄필 말러 교향곡 3번

romantiker74 2005. 4. 7. 20:46


 

 

2005년 1월 8일 오후 3시
분쿄쿠 시빅홀
시빅홀 교향악 시리즈 11
말러 교향곡 3번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 정명훈
메조소프라노: 타라타니 치에코
여성합창: 도쿄 오페라 싱어즈
어린이합창: 도쿄 어린이 합창단

일본에 가면 정명훈씨가 이끄는 도쿄필의 연주를 꼭 들어보고 싶었다. 실험실에 있는 취미로 플륫하는 친구가 도쿄필 별로 잘 못한다고 해서 좀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휘봉을 정명훈씨가 쥐고 있으니. 게다가 한국에서 봤던 다큐멘터리에서 정명훈씨가 도쿄필에 대해 예쁘게만 연주하려고 해서 그렇지 연주력 자체는 뛰어나다고 이야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있어서 나름대로 기대가 되었다. 게다가 지금 일본에서 말러 사이클을 진행 중이니 더더욱 나를 자극했다.
혼의 서주로 1악장이 시작되었다. 도쿄필 금관의 음색이 생각보다 거친 느낌을 주는 것이 신기했다. 정명훈씨가 말러의 2번을 90분 가까이 연주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 느린 연주를 들려 주지 않을까 생각했는 데 교향곡 3번은 전체적으로 빠른 템포로 진행했다. 도쿄필의 연주력은 생각만큼 좋지는 않았다. 금관진은 한국의 오케스트라와 마찬가지로 약했고 현의 날카로운 표현력만 갖고 본다면 우리의 KBS향이나 부천필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피치카토, 비브라토, 글리산도 등을 구사하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소리는 우리나라 악단보다 훌륭한 것 같았다. 물론 그런 다양함이 말러의 교향곡 3번 같은 작품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건 당연하다. 1악장은 일단 그 다양한 소리와 배경으로 그런 소리가 깔렸을 때도 뭉게지지 않는 좋은 밸런스 그리고 제법 넓게 잡은 다이나믹 -특히 남쪽의 폭풍을 들려줄 때는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이 인상적이었다. 무대 뒤 오케스트라 처리도 매우 인상적이었고 특히 무대 뒤에서 타악기가 울리는 부분이 훌륭했다. 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리려다 실패한 것인지 판이 잠이 깨는 부분은 나올 때 마다 어딘지 어그러지기 일보직전인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필과 정명훈 님께 미안하긴 하지만 1악장만 두고 보면 깊은 느낌을 전해준 임헌정 교수가 이끌던 우리학교 음대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적어도 나에게는 더 감동적이었다.
2악장은 악장 솔로와 목관 솔로가 좋은 느낌을 주었다. 포스트혼 에피소드는 무대 뒤에서 연주했는 데 딱히 삑사리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감동을 주는 연주는 아니었다.
3악장도 오케스트라의 다채로운 음색 특히 목관의 솔로가 좋게 들렸다. 도쿄필 플륫주자하고 오보에주자가 참 잘하는 것 같다. 3악장 정도 되니 금관이 삑사리도 많이 내긴 하는 데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적어도 그 부분은 연습을 많이 했는 지 삑사리를 안 냈다. 무대 뒤 트럼펫도 훌륭하다고까지 말해주기 힘들지만 무리없이 연주했고 배경의 현의 움직임이 또렷하게 들어오는 느낌이 좋았다.
4악장은 일본 성악가가 하면 얼마나 하겠나 싶었지만 의외로 훌륭했다. 오케스트라 반주 때문인지 가수의 노래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말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다. 가수의 독어 딕션도 좋은 것 같았다.
5악장이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듣기 힘든 연주를 들었다는 느낌을 주었을 지 모르겠다. 반바지에 스타킹을 신은 교복 같은 유니폼을 입은 어린이 합창단이 어쩌면 그렇게 빔 밤을 잘 하던지. 그리고 여성합창도 훌륭해서 확실히 합창은 일본이 잘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주었다. 굳이 아쉬운 점을 찾자면 별로 밝다는 인상은 못 받은 것 정도일까?
6악장 시작 부분이 어제 연주에서 어쩌면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었을 지 모르겠다. 정말 담담하게 연주했지만 합창의 잔향이 잦아들고 현으로 나오는 6악장의 주제를 들으니 정말 코끝이 찡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템포를 밀고 당기지는 않았지만 음폭을 넓게 잡은 해석이 정명훈 씨의 열정적인 모습과 더불어 감동을 주었다. 코다에 들어가기 전에 나오는 금관의 코랄은 기대만큼 좋지 않았고 6악장에 들어와서 현도 조금 힘이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주었지만 모든 것을 정화하듯 끝나는 6악장의 피날레에서는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전체적으로 도쿄필의 연주력은 내 기대치가 높았었는 지 기대 이하이기는 했다. 그래도 온돌은 커녕 중앙난방도 없는 일본의 집에서 사는 나에게는 여름과 판의 복귀를 보여주는 말러의 교향곡 3번을 정명훈 씨의 지휘로 듣는 것 만으로도 큰 감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