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2005/4/18) 스크로바체프스키 요미우리 일향의 브루크너 7번

romantiker74 2005. 10. 28. 19:49

 

요미우리 일향 정기연주회
2005년 4월 18일
산토리홀
지휘; 스타니슬라브 스크로바체프스키
베토벤 교향곡 1번
브루크너 교향곡 7번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교향악 축제가 한창인 것 같다. 유난히 브루크너 프로그램이 많아서 이럴 때 하필 포닥을 나와있는 나를 가슴아프게 했다. 특히 박은성씨 지휘의 수원시향의 브루크너 3번은 상당히 기대가 되는 데 안타까웠다. 일본에 와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초연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그것도 블롬슈테트의 지휘로 놓친 게 아쉬웠고 스크로바체프스키의 지휘는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연주된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1번이었다. 내 자리는 2층의 옆쪽이었는 데 1층과 달리 좀 잔향이 심했다. 담백한 느낌이 어울리는 베토벤의 교향곡 1번에는 별로 좋지 않은 음향이었다. 1악장이 시작되고 나름대로 경쾌한 해석인 데 조금 묵직한 음향이 어딘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현의 합주력도 어딘지 우리나라의 왠만한 악단도 이만큼은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2악장부터 해석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2악장은 느린 악장이 아닌 카논의 느낌이 강조된 악장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3악장도 미뉴엣이 아닌 스케르초의 분위기가 나올 만큼 다이나믹하게 연주했다. 이 상황에서 4악장의 선택은 초고속 해석만이 남을 것 같았다. 스크로바체프스키의 선택도 물론 그랬다. 4악장은 요미우리 일향의 합주력에 감동받았다. 이전에 들었던 NHK심포니의 모차르트 교향곡 39번의 4악장을 연상시키는 민첩함과 현란함이 느껴졌다. 약간 잔향이 작아서 깔끔한 소리가 나는 위치에서 들었다면 더욱 감동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오늘의 메인은 역시 브루크너 7번, 이 자리라면 브루크너 7번에서는 오히려 오르간적인 소리가 나올 거라고 기대하면서 4악장이 끝나자 열심히 박수를 쳐 주었다.
드디어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 너무 아름답고 멜로디도 풍부한 작품이라서 어쩌면 지휘자의 특별한 해석이 많이 드러나지 않는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RSO 자브뤼켄으로도 훌륭한 브루크너를 들려주었던 스크로바체프스키의 악단 통제력이 역시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다. 풍부한 잔향의 영향일수도 있지만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금관이 일단은 인상적이었다. 가슴을 적시는 아름다움이 있는 작품이라 울려퍼지는 금관은 정말 진한 여운을 주었다. 또하나 놀라운 부분은 현주자의 힘이었다. 쏟아지는 금관 속에서도 자기 소리를 잘 내주는 힘이 인상적이었다. 1악장 트럼펫 솔로가 참 인상 깊었는 데 그 후에는 좀 안타까운 부분이 많았다. 확실히 브루크너 7번도 수석 금관 주자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작품일 것 같다. 금관 솔로 부분은 어딘지 자신없어 보이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 드디어 기대했던 2악장. 타악기 석에 심벌이 있는 걸 봐서 노박판을 사용하는 것 같다. 2악장은 목관 솔로가 좀 기대에 못 미쳤다. 플륫 솔로하시는 분이 좀 튀어 보고 싶으셨던 듯. 3악장은 조금 다른 분위기로 제법 작렬하는 금관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최면적이면서도 동적인 매력은 여전했다. 지금까지 특별한 해석을 찾아보기 힘들었는 데 4악장에서는 스크로바체프스키의 남다른 해석이 좀 느껴졌다. 조금 복잡해서 깔끔하게 풀어나가는 쪽이 좋게 들리는 경향이 있었는 데 스크로바체프스키는 정 반대의 접근을 취했다. 각 경과구를 모두 강조하고 템포에도 탄력을 주어서 4악장의 모든 것들을 끄집어 내려고 최대한 애쓰는 해석이었다. 길이도 다른 브루크너의 4악장들에 비해 조금 짧기도 한 악장인 데 그러다보니 조금 복잡하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한껏 부풀려서 마무리하는 피날레를 들으니 장대한 드라마가 하나 끝나는 구나 하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스크로바체프스키는 마지막 금관이 울려퍼지고 약간의 정적을 기대했던 것 같은 데 동경의 청중들은 잔향이 사라지기도 전에 사정없이 박수를 쳐 주었다. 스크로바체프스키의 멋적어하는 동작이 좀 눈에 들어왔다. 연주를 듣고 나서는 물론 브루크너의 7번에 감동을 받았고 4악장까지 유지되는 현의 집중력, 은은히 퍼지는 금관이 훌륭했지만 왠지 올해 우리나라 교향악 축제 때 연주된 어느 연주회의 브루크너가 이만큼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