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

교향곡 10번 (해설:이승재)

romantiker74 2005. 3. 20. 18:48


<쇼스타코비치 ; 나는 누구인가?>

아래의 자료는 '고전음악을 사랑하는 부산사람들'의 모임 때에 제가 발표했던 것입니다. 발표 자료라 조금은 생략된 내용들이 많아 이해하기가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여기에 실은 것은 교향곡 10번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을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글을 썼으면 하는 생각은 있으나, 지금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서 일단은 이 정도 수준에서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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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 나는 누구인가?



글 : 이승재



쇼스타코비치는 1906년 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던 게 아닌가 한다. 페테르부르크음악원 피아노과를 졸업한 그의 어머니 소피아 마실리에프나는 그가 9세가 되던 해부터 피아노를 가르쳤고, 그 무렵 쇼스타코비치는 작곡도 병행했다고 한다.
이 무렵 작곡된 그의 작품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데 작품의 기법면에서 놀라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면에서 놀라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작곡한 작품들을 볼 때, 정말 심상찮음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제목들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병사’, ‘자유의 찬가’, ‘혁명의 희생자에게 바치는 장송행진곡’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쇼스타코비치는 작곡을 시작할 때부터 당대의 문제를 담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그가 혁명, 대숙청, 전쟁, 정치적 비판 등의 혼란의 시기를 살아오면서 세계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작곡가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실제로 그가 작곡한 15개의 교향곡은 어떻게든 저널리즘으로부터 정치적 해석을 낳게 하는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켰던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쇼스타코비치로서도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을 것이고, 또한 그렇게 하기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작곡한 교향곡 중 표제가 있는 것들은 순수한 기악곡이라기보다는 어떤 부분에서 정치적인 성향을 분명히 띠고 있다. 그 표제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0월(혁명)에’, ‘메이데이’, ‘레닌그라드’, ‘1905년’, ‘1917년’ 등을 보면 역시 그가 당대의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을 한 작곡가였는지 알 수 있다.
아마도 이를 통해 쇼스타코비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옹호한 작곡가로 비춰지고 있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는 이 작곡가의 음악이 연주되는 것이 한 때 금지되기도 했지 않았던가? (물론 이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서 또 다른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는 분명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옹호한 작곡가임에는 분명하다.)
그렇지만 쇼스타코비치를 단순히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옹호한 작곡가라고 평가하기에는 그의 작품의 성격이 너무나 다양하고, 다채로우며, 서구의 현대적 기법들을 많이 차용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단지 사회주의를 찬양하고, 선전과 선동의 음악을 만든 작곡가라는 것에는 일반적인 견해에서 동의하기 힘들다. 그가 작곡한(교향곡의 수와 같은) 15개의 현악 사중주만 보더라도 어떠한 이념을 띠고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너무나도 충실한 작품이지 않은가? 그는 이 15곡의 곡들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담아내었고, 심지어는 많은 정치적 이슈를 담아내었던 교향곡에서마저 그는 자기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죽음과 삶에 대해 진지한 철학적 모색을 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가 처음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교향곡 1번의 경우는 젊었을 때의 재기발랄한(물론 그의 음악 한 가운데에는 어둑한 그림자를 느낄 수도 있지만)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쇼스타코비치는 1975년 사망할 때까지 격동의 시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음악적 재능과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해 ‘나’를 찾아 나선 작곡가였으며, 또한 ‘나’를 세계 속에서 찾음으로 해서 ‘예술’, ‘인생’ 등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진 작곡가였다고 할 수 있겠다.




① DSCH

쇼스타코비치를 이야기하면서 DSCH음형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는 쇼스타코비치를 독일어로 표현했을 때의 이름과 성의 이니셜을 따른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를 독일어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D(mitri) SCH(ostakowitsch).
DSCH는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로 ‘D-Eflat-C-B’이다. 즉 ‘라-내림마-다-나’인 것이다. 결국 이 음형은 쇼스타코비치 자신을 나타내는 음형이며 이 음형을 통해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음악 속에서 하나의 실체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쇼스타코비치가 음악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비판적이었고, 또한 음악을 통해 자기를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음형이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교향곡 10번에서이지만, DS음형으로만 된 것이라든지, 혹은 영어식으로 DSH식으로 된 것은 그 이전의 작품에서도 간혹 드러나며, 이 이후의 작품에서는 변형된 DS음형과 DDSCH음형 등은 자주 모습을 보이게 된다.
아무튼 쇼스타코비치는 이 음형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깊이를 더하고 음악을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또는 음악과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계속해서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② 내 작품 전체에 대한 서문 op.123

전체의 기록들은 단숨에 적용되었다.
그래서 내 귀는 오직 내가 작곡해왔던 것에 대해 감시한다.
청중은 고통스런 신음으로 들었다.
작품은 출판되었다. 그리고 다시 야단법석이었다.
이렇게 뚜렷하게 서문을 쓰는 것이
단지 내 작품 전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소비에트 작곡가들의, 또한 외국의 작곡가들의
많고 많은 다른 모든 작품들에서다.
그리고, 보아라, 내 이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나는 소비에트의 예술가이며
또한 몇 가지 아래와 같은 다른 직함을 가지고 있다.
소련연방공화국 작곡가 협회의 비서이며,
또 다른 과제와 의식에 책임있는 급부라는 직함을.




③ 교향곡 10번

이 교향곡은 참으로 파란이 많은 교향곡이다. 첫 번째 이유는 1945년 9번 교향곡을 작곡한 뒤 무려 8년 만에 작곡한 교향곡이라는 점이며, 두 번째는 그로 인해 본의 아니게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스탈린이 죽은 후 발표된 이 작품은 이른바 해빙시기의 작품으로 교향곡 9번의 작곡을 통해 형식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던 그가 역시 순음악적 가치가 높았던 10번 교향곡을 내놓음으로 해서 어떤 면에서는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 것이 문제의 시발이었다.
더군다나 쇼스타코비치 사후 서구에서 출판되었던 솔로몬 볼코프의 ‘증언’이라는 책에서는 이 작품을, 특히 2악장을 ‘스탈린의 음화’라는 표현을 해 그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일면 타당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는 측면이 있는 것은 2악장에 이은 3악장에서 바로 ‘DSCH'음형이 등장한다는 점인데, 이를 통해 해석하는 사람들에 따라서는 스탈린의 압제에서 해방된 예술가들을 표현한 작품으로 비춰진 것이다. 마침 스탈린이 죽고, 그 해에 이 작품이 발표되었으니 시대적 상황에 민감한 작품을 많이 썼던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으로서는 응당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기서 교향곡 10번을 쇼스타코비치 전 생애에 걸쳐 그가 찾고자 했던 ‘예술적 진리’, ‘인생의 문제’, 즉 ‘나는 누구인가?’ 라는 철학적 문제를 밝혀내려고 한 작품으로 해석하고 싶다. 더 나아가 ‘나’를 찾음으로 해서 내면적인 자아성찰뿐 아니라 세계 속에서 존재하는 나를 찾는, 즉 세계 안의 쇼스타코비치가 누구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진지한 물음의 교향곡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1) 1악장 : 비극적인 세계의 관조 (세계는 광활한 대지와도 같다.)

모데라토. 서정적인 소나타 형식이다. 3/4박자가 주를 이루지만 가끔 변박이 등장한다.
처음부터 쇼스타코비치의 특기라 할 만한 저음현에서 고음현으로 이동하는 주제가 제시된다. 특히 저음현에서 제시되는 상승하는 음의 주제는 전체 악장에서 순환동기와도 같이 등장해서 교향곡 10번의 통일적인 느낌을 주는 데 기여한다.
이 주제는 상승하고 하강하면서 곡의 분위기를 다양하게 이끌고, 이어서 등장하는 클라리넷과 플룻에 의한 서정적인 선율과 함께 1악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한다.
1악장은 브람스의 교향곡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구성적인 면에서 탄탄하게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에서 보여지듯이 서정적인 분위기로 연출된 러시아 전통의 소나타에 가깝다.


(2) 2악장 : 격동의 시기. 안팎에서 일어나는 거센 고통.

알레그로. 스케르초악장이다.
1악장에서 나왔던 저음현의 주제가 현이 강하게 두 번 울린 다음 등장하고 목관이 이를 이어받는다.
흥미로운 것은 중간부의 주제인데, 아마도 이 선율 때문에 볼코프는 이 악장에 대해 ‘스탈린의 초상’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해볼 수 있다.
2악장의 광포한 이미지는 자아와 대립된 개념으로서의 세계의 공격성, 폭력성 등을 상징한다 하겠는데, 이는 쇼스타코비치의 특성이라 하겠다. 특히 장대한 악장 사이의 스케르초 악장은 비극적 현실에 절규하는 쇼스타코비치를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연구 중인 과제로 조만간 연구 결과가 완성되는 대로 발표하도록 하겠다.)


(3) 3악장 : 나는 누구인가? 이 세계에서 무얼 하는 존재인가?

알레그레토. 3/4박자.
어떤 해설서에는 왈츠라는 표현을 하였는데, 왈츠 리듬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왈츠라고 보기에는 어딘지 어색한 부분이 많고 무리가 따라 보인다.
이 악장 역시 1악장에서 처음 제시되었던 저음현의 상승하는 주제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에 이어서 쇼스타코비치 자신을 상징하는 ‘DSCH'음형이 등장한다.
이 두 가지의 음형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발전하는 악장이다.
3악장에서 흥미로운 것은 ‘DSCH’가 신경질적일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하고픈 쇼스타코비치의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 있겠는데, 이러한 음형의 반복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으로 들리는 것은 왜일까?


(4) 4악장 : 나는 쇼스타코비치. 영광과 고통의 이름!

안단테-알레그로.
상당히 복잡한 박자로 연결되어 있으며 다양한 악상들을 나타낸다.
안단테의 서주는 상당히 서정적이면서도 어두운 느낌이다. 1악장에서 등장하는 저음현의 주제에 비해 음폭이 상당히 큰 것이 특징인데, 이는 불안한 느낌을 안겨주는 효과를 더 크게 발휘하고 있다. 현과 목관이 주고받으며 대화를 하다가 약간 밝은 분위기로 선회하면서 알레그로로 진입한다.
알레그로에서는 이전까지의 갈등의 요소들이 해결된다기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인정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세계는 어차피 비극적이지만(그리스 비극에서 나타난 운명처럼) 그 속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정체성을 찾음으로 해서, 그리고 그 역할(세계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음으로 해서 인간 실존에 대한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쇼스타코비치가 추구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실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울림은 중간부 하이라이트에서 그 정점에 이르는데, 1악장에서 등장했던 저음현의 주제가 무서운 속도로 반복해서 질주한 다음에 모든 악기가 투티로 ‘DSCH'음형을 들려주는 것으로 요약되는 대목에서는 절로 이 작곡가에 대한 경탄이 울려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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