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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8번 (해설: 이승재)

romantiker74 2005. 3. 20. 18:38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8번은 1943년에 작곡되어 같은 해에 므라빈스키에 의해 초연된 교향곡이다. 일명 전쟁 교향곡이라고 불리는 7번에서 9번에 이르는 교향곡 중에서 중간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전쟁의 비극성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쇼스타코비치가 이 곡을 작곡할 당시의 2차 세계대전의 상황은 그동안 수세에 있던 소련군이 공세로 돌아가 전쟁에 대해 어느 정도 승리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시기라고 한다. 그래서 일면 쇼스타코비치가 이 곡에 대해 언급했던 것처럼 '인생은 즐거움이다.'라는 것으로 단순화시킬 염려도 있다. 그렇지만 이는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내면의 심리를 드러내는 '모더니즘의 방법론' 사이에서 갈등한 쇼스타코비치가 한 정치적인 발언쯤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 곡의 전체적인 짜임은 전통적인 4악장의 구성이 아닌 5악장의 구성이다. 5악장 역시 각 악장마다 동등한 무게 중심이 실려있다기보다는 약간은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다. 각 악장별의 분석 이전에 우선은 전체적인 구성면에서 8번 교향곡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①전체 구성면에서의 교향곡 8번

앞서도 언급했지만 교향곡 8번은 전체 다섯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는 동등한 무게로 다섯 개의 악장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그 형식적인 면을 다각도로 살펴 보겠다.

우선 형식상 가장 유사한 교향곡의 전례를 찾아보면 베토벤의 6번 교향곡인 '전원'을 들 수 있겠다. 전체가 다섯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것과 세 번째 악장부터 다섯 번째 악장까지가 아타카로 연결된다는 것이 매우 흡사하다. 그렇지만 그 내용면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베토벤의 교향곡이 전원 생활의 즐거움을 표현한 것이라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그와 반대되는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환경과 내면의 심리를 표현한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쇼스타코비치로서는 전원 교향곡의 형식을 빌려와서 역설의 묘미를 살려내려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앞선 교향곡과의 유사성은 단지 전원 교향곡 하나만에 국한되지 않는다. 말러의 5번 교향곡에서도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는데, 말러의 교향곡 5번은 다섯 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으면서도 전체 3부로 만들어져 있다. 가운데 스케르초 악장을 중심으로 해서 앞의 두 악장과 뒤의 두 악장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쇼스타코비치는 이를 약간 변형시켜 3부 형식으로 곡을 만들어 선보이고 있다.
1악장을 1부로 본다면 2악장이 스케르초 악장으로서 앞의 1부와 뒤에 연결되는 2부(3,4,5악장)를 연결하는 고리로 자리를 차지한다. 곡의 길이 역시 1악장과 3,4,5악장이 비슷하며, 연결되는 고리로의 역할을 맡은 스케로초 악장 역시 말러의 스케르초 악장과 마찬가지로 짧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후기 낭만주의의 작풍을 이어가려는 쇼스타코비치의 의도는 단순하게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만 자신을 표현하기 힘들었던 그를 잘 살펴볼 수 있는 단면이라 하겠다.
이러한 형식상의 유사성은 다른 작곡가뿐 아니라 자신의 전 작품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4번 교향곡이다. 4번 교향곡 역시 전체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운데가 바로 스케르초 악장이다.
전체가 3부로 이루어져 있는 작품 중에 가운데의 악장이 스케르초 악장인 것은 쇼스타코비치의 말년의 위대한 작품 가운데 하나인 바이올린 소나타와 비올라 소나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나같이 비극성이 그 주조가 되는 작품들인데, 과연 쇼스타코비치가 이러한 작품들의 중간에 스케르초 악장을 삽입한 의도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형식적인 측면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스케르초 악장을 중심으로해서 전반부와 후반부가 대칭을 이루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1악장은 전체적으로 느린 아다지오로 시작해서 빠르게 진행했다가 다시 느리게 끝맺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3,4,5악장을 하나로 묶었을 때는 '빠른-느린-빠른'으로 진행되어 정확하게 1악장과 반대되는 모습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1악장에서는 주된 음형이 ↘↗로 진행하는 데에 반하여, 마지막 악장인 5악장에서는 주된 음형이 반대로 ↗↘로 진행하는 것이다.
결국 주된 음형의 리듬이나 곡의 빠르기 등이 정반대를 나타냄으로 해서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전체에서 전쟁으로 인한 허구적인 욕심 등을 나타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구체적으로 각 악장별로 이 교향곡에 대해서 알아 보도록 하자.


②1악장

1악장은 쇼스타코비치 자신이 전에 작곡했던 교향곡 5번을 연상시키는 현의 서주로 시작된다. 전체는 '느린-빠른-느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음현과 고음현이 주고받는 것이 5번 교향곡의 시작과 흡사한 외형을 띤다. 이 음형은 1악장뿐 아니라 전체의 악장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어 바이올린에 의해서 주제가 제시되는데, 이는 서주에서 보여주었던 음형이 계속해서 반복되게 된다. 이어서 곡은 조금 빠르게 다섯박자의 리듬에 맞춰 제1바이올린의 연주가 등장한다.
현의 다섯박자를 배경으로 한 바이올린의 짧막한 에피소드는 중간에 잉글리시 호른과 현에 의한 노래의 삼부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리듬은 그리 오래 가지 않고 곧바로 서주에 나왔던 아다지오로 다시 돌아간다.
그 주제는 플룻 두 대가 먼저 시작하고, 이어서 다른 목관들이 플룻을 이어받으면서 계속해서 확장해 나간다. 이 확장은 2번 교향곡에서 보여주었던 폴리포니를 형성해가면서 포르티시시시모(ffff)까지의 강주로 올라가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이는 곧이어 곡의 중간 부분에 해당하는 알레그로 논 트로포로 연결된다. 호른에 의해 제시되는 셋잇단음표의 주제는 이 부분에서는 가장 중요한 인상을 남기는 음형으로 바로 이어지는 행진곡풍의 알레그로를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1악장에서 가장 경쾌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하지만 이 행진곡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고음악기는 네 박자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진행하고, 저음악기는 스포르찬도와 쉼표를 병행하며 강하게 진행하는 이 행진곡은 서주에서 나왔던 강렬한(포르티시시모로 연주) 아다지오에 압도당하고 만다.

이 투티는 타악기와 현의 트레몰로로 인해 극도의 불안한 심리를 연출하게 된다. 투티 이후에 현의 트레몰로를 반주로 해서 잉글리시 호른이 상당히 서정적인 노래를 한다. 이 부분은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에서도 사용되었던 방법으로(물론 사용된 악기는 다르지만) 곡의 전체적인 비극성을 살려내는데 크게 일조한다. 쇼스타코비치는 5번 교향곡에서 투티 이후에 현의 조용한 반주 속에 관악기들의 서정적인 멜로디를 통해 비극성의 효과를 살린 바 있다.
잉글리시 호른의 노래는 서주에서 보여줬던 음형 다음에 나오는 다섯 박자의 리듬을 반주로 해서 연주된 다음 이내 현에게 그 역할을 넘겨준다. 그러다 곧이어 다시 서주의 음형이 아다지오로 금관에 의해 무슨 숙명인 양 다시 등장하고, 조용한 가운데 1악장을 끝맺게 된다.

여러 점에서 볼 때, 8번 교향곡의 1악장은 5번 교향곡의 1악장과 유사성을 많이 보인다. 8번을 므라빈스키에게 헌정한 이유라고 할까? 그렇지만 8번 교향곡은 5번 교향곡과는 또 다른 점이 많이 보인다. 다만 1악장에서의 형식적 측면에서는 서주의 시작이나 마무리 되는 측면에서 볼 때 많이 닮아 있고, 그리고 그 부분만을 일단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다.


③2악장

스케르초 악장이라고 볼 수 있다. 2악장은 앞의 1악장과 뒤에 오는 3~5악장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러한 중간에 스케르초 악장을 삽입하는 것은 쇼스타코비치가 특기로 사용했던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쇼스타코비치만의 특기라고는 볼 수 없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말년에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와 비올라 소나타에서 보여주는 비극적인 작풍과 많이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교향곡 4번 역시 그의 신상에서 많이 불안했을 때 작곡된 작품이라고 한다면 어떤 유사성까지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쇼스타코비치가 스케르초 악장을 가운데 삽입한 작품들의 성격이 차지하는 비중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네 작품만으로 단순하게 일반화시키는 것은 무리가 따르는 해석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머지 작품이 쇼스타코비치의 내면이 극도로 불안했을 때 쓰여졌다는 사실은 8번 교향곡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결코 무시하지는 못할 해석의 방법을 제공한다고 하겠다. 물론 이는 곡해석에 있어서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방법이기는 하겠지만, 여기서는 다만 해석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는 의미에서 언급을 해보았다.

2악장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음형이 작용한다. 하나는 1악장에서의 서주가 변형된 형태로 현에 의해서 처음에 제시되는 리듬이며, 하나는 피콜로에 의해서 제시되는 다이나믹한 리듬이다. 이 두제는 2악장 전체에서 서로 얽히면서 발전하고 대화한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여리게 해체되는 듯하던 곡이 서서히 강주로 바뀌면서 팀파니의 리듬 아래 전체 악기가 팔분음표로 단호하게 외치면서 끝맺는다.


④3악장

비올라의 단순한 사분음표의 연속으로 시작되고 이어서 관악기들이 고음역의 음을 연주한다. 3악장 전체에서 상당히 중요한 모티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극도의 공포감을 조성한다.
쇼스타코비치는 현의 일정한 반복을 통하여 내면의 불안한 심리를 자주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4번 교향곡의 1악장에서의 현의 무궁동과 13번 교향곡 4악장('공포'라고 명명된)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이어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의 스케로초 악장을 연상시키는 현의 피치카토와 목관과 호른의 대화가 연주된다. 이는 순간적으로 연주되며 다시 호른과 금관의 스포르찬도를 배경으로 현악기가 처음 비올라의 음형을 재차 연주한다. 그리고 처음보다 극심한 절규가 관악기에 의해서 울려나온다.
타악기가 가세하면서 트럼펫이 행진곡풍을 연주한다. 이는 전쟁 승리에 대한 거짓된 조소로 보인다. 왜냐하면 곧이어 다시 비올라의 불안한 음형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시 절규한다.
비올라로 시작된 리듬은 팀파니가 이어받아 극도로 흥분한 상태로 곡이 진행된다. 이 흥분은 작은북을 연타하면서 아타카로 4악장으로 넘어간다.


⑤4악장

파사칼리아 형식으로 쓰여진 악장이다.
3악장에 이어서 투티로 장엄하게 시작하는 이 악장은 전쟁으로 인한 마음의 고통과 폐허로 변한 시가지 등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희생자에 대한 애도가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전체는 11개의 변주로 되어 있다.

전악장에서 아타카로 이어져 제시된 주제는 1악장의 서주와 무척 닮아 있는데, 이는 4악장 전체에 저음현에서 활약한다.
1번부터 4번까지의 변주는 저음현에서 활약하는 주제를 배경으로 고음현에 의해 멜로디가 제시된다. 5번 변주부터는 호른이 가세해서 무게감을 더하고 6번 변주에서는 피콜로가 기교적인 선율을 선보인다. 이는 재생의 의미, 즉 전쟁으로 피폐해진 상황에서도 새는 노래한다는 설정으로 해석해도 될 듯하다.
피콜로의 연주는 7번 변주에서 플룻이 이어받으며 트레몰로로 연주한다. 이어 8번 변주에서는 클라리넷이 피콜로의 음형을 이어받아 좀 더 굵은 목소리를 내며, 9번 변주는 이 클라리넷 두 대가 연주하고 있는 가운데, 바이올린이 저음현의 음형을 흉내내면서 진행한다. 이어 클라리넷이 다시 피콜로가 연주했던 음형을 연주하는 10번 변주를 거쳐 플룻의 트레몰로와 클라리넷과 베이스 클라리넷이 주선율을 따라하는 것으로 조용히 악장이 마무리되면서 5악장으로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저음현의 묵직한 반주에 힘없어 어두운 느낌이 들지만, 피콜로에 의해 제시된 주제는 그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불씨를 잡으려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⑥5악장

이 악장은 '빠른-느린-빠른-느린'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제시되는 주제는 파곳이 맡아서 연주한다. 그런데 이 주제는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 1악장 서주의 모티프를 뒤엎어 놓은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1악장과는 달리 약간은 밝은 느낌을 준다.
이 주제는 곧이어 바이올린이 받아서 연주하고 플룻이 트라이앵글의 경쾌한 울림을 반주삼아 흥겹게 노래한다. 첼로가 이어서 부르는 노랫가락도 약간 구성진 부분이 있지만 그렇게 구슬프지만은 않다. 오보에가 파곳이 연주했던 음형을 다시 받아 연주하고 현들이 즐겁게 노래한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주제가 등장한다.
바로 트럼펫에 의해서 제시되는 것인데, 제7번 교향곡에 삽입된 그 유명한 전쟁의 주제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현의 움직임 자체가 조금은 불안해 보인다. 그렇지만 끈질긴 것은 파곳에 의해서 등장했던 제1주제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꼭 희망을 붙잡아야만 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과도 같아 보인다.

그 주제를 바탕으로해서 곡은 점차 발전하여 클라이맥스로 오른다. 그렇지만 클라이맥스의 끝에는 1악장의 서주에서 나왔던 주제가 반복됨으로 인해서 다시 한번 비극성을 깨우치게 된다. 강렬한 아다지오의 투티에서 그 주제가 나오는데 이는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그 전쟁의 비극성을 고발한다는 당대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투티 이후 베이스 클라리넷이 다시 알레그레토로 반전하려는 주제를 제시하나 반음계의 사용으로 인해서인지 어딘지 모르게 어둑신한 느낌을 배제할 수가 없다. 이어 등장하는 바이올린의 독주는 기괴한 느낌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바이올린의 독주는 5악장의 주제 음형을 비틀어서 ↘↗로 진행하면서 희망에 대한 강한 독설을 퍼붓는다. 반면 희망에 대한 고집은 대단한 것이어서 첼로에 의한 독주는 그 반대 음형인 ↗↘로 진행한다. 연이어 5악장의 처음을 장식했던 파곳이 다시 등장하여 그 주제를 이어간다.

실로폰이 경종을 울리듯 약하게 때리면서 현은 모두 다시 화합한다.
여기서 바이올린 솔로가 다시 등장하는데, 이는 고음현들로 하여금 같은 음을 약하고 길게 연주하게끔 이끈다. 그리고 5악장의 네 번째 마디에서 나왔던 파곳의 주제 선율을 반복하면서 곡은 조용히 마무리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므라빈스키에게 이 곡이 헌정되었음에도 므라빈스키의 녹음기록이 그렇게 많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마지막 악장에서 5번 교향곡과는 달리 장대하게 마무리되지 않고 마지막에 해체되듯 끝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