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

교향곡 5번 d단조 (해설: 윤성준)

romantiker74 2005. 3. 20. 18:32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 symphony no.5 in d minor op.47 [1937]


 "므첸스크의 맥베스부인", 교향곡4번 등의 잇따른 문제작들이 스탈린 정권의 기관지인 즈다노프로부터 맹렬한 혹평과 비난을 받으면서 쇼스타코비치는 수세에 몰렸다. 이 위기라는 것이 단순히 창작 활동을 제한받는 것이 아니라 정말 숙청당할지도 모르는 목숨이 걸린 위기였던 것이다. 실제로 스탈린으로부터 숙청당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부지기수였다.

 

  이런 상황에서 쇼스타코비치는 색다른 길을 모색하게 된다. 말러와 베르크를 잇는 후기 낭만적이고 전위적인 길을 포기하고, 이른바 회색빛의 모호한 작곡법을 채택하게 되는 것이다.회색빛의 모호한 작곡법이라는게 따로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의 회색이란 중의적인 모호함을 뜻하는 것이다. 화려하고 현란한 색채, 민요풍의 선율의 채용으로, 스탈린이 주장하는 "민중적인 쉬운 음악"을 따르면서도, 이면으로는 후기 낭만과 전위적인 색채를 잘 배합하고,레퀴엠적인 요소를 보일듯 말듯하게 섞는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재능 넘치는 작곡가였고, 그는 민중적인 화려한 음악과 후기낭만풍의 거대한 스케일을 잘 배합하고, 친숙한 선율과 처절하고 슬픈 비가의 요소를 교묘하게 섞어내는데에 성공을 했다. 그 최초의 최대의 성공작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인 것이다.

 어쨌든 수세에 몰렸던 쇼선생은 1937년 11월 21일 볼셰비키 혁명 20주년에 므라빈스키가 지휘한 이 곡의 초연 연주회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소련 당국으로부터 영웅적인 작품이라고 엄청난 호평을 받았고, 그 이후의 몇 차례의 위기도 상쇄시킬 만한 평가를 받았다.하지만, 초연 시의 쇼스타코비치의 지인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는 일화를 꺼내지 않더라도, 단지 "혁명"(이것은 구소련시대에 이 작품에 붙여졌던 애칭이기도 하다)의 현란한 모습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작품의 선율은 귀에 잘 들어오는 편이고, 동적인 부분에서는 시원시원함이 느껴져서 이 작품에 쉽게 매력을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1악장과 3악장의 어둡고 싸늘한 색채는 영웅적인 혁명의 세계와는 거리가 있다. 그가 스탈린에 의해 희생된 넋을 위한 레퀴엠적인 작품으로 쓴 현악 4중주
 8번이나 교향곡 14번에서의 느낌과 너무도 흡사한 것이다. 하지만, 교묘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3악장의 선율은 싸늘함을 느끼기보다는 친숙한 선율로 인해 멜랑콜릭함과 아름다움을 더 느끼게 하며, 1악장의 어두움은 중간의 격정적인 부분과 뒷부분의 은은하고 밝은 분위기와 상쇄가 되며, 2악장의 왈츠풍의 선율도 역시 어두운 부분을 가려준다. 무엇보다 4악장의 강렬한 행진곡이 이 곡을 혁명의 행진으로 통하게 만들어주었다.

 이 회색빛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할 것이다. 모호함이 이 작곡가의 목표였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 교향곡의 높은 완성도가 이런 것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1945년에 출판되었고 3관 편성을 가지고 있다.

 * 편성 : 플룻2,피콜로1,오보2,클라니넷(B플랫),클라니넷(E플랫)2,
          바순2,콘트라바순,혼4,트럼펫3,트럼본3,베이스튜바
          팀파니,베이스드럼,사이드드럼,첼레스타,피아노,실로폰,철금
          탐탐,하프,현5부

 1악장 : 모데라토 d단조.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의 악장으로, 느리고 어두운 서주, 격정적인 중간부,앞부분보다는 정화된 느낌을 주는 느린 뒷부분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의 1악장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모짜르트의 아다지오와 푸가를 연상시키는 어두운 1주제가 저음 현에 의해 전개가 되며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바이올린에 의해 2주제가 등장하는 데, 역시 어두운 분위기이다. 느린 부분이 지속되다가 현의 동기가 저음 피아노로 옮겨 가면서, 행진곡으로 전이가 된다. 관이 전면적으로
 나서면서 점차 고조되면서 현이 격하게 1주제를 연주하면서 다시 잠잠해지며 앞부분보다는 평화롭긴 하지만 우울한 톤으로 곡이 진행이 되다가 철금과 금관에 의한 여린 음으로 1악장이 끝난다.

 2악장 : 알레그렛토 스케르쪼. a단조

 유모러스하고 다소 경쾌한 분위기의 악장이다. 하지만 흉포한 리듬과 가벼운 폴카풍의 분위기가 엇갈려서 무언가 눌린 느낌을 준다.
 중간에 우아한 분위기의 느린 부분이 있는 3부 형식인데, 끝나는 부분은 대단히 격하다.

 3악장 : 라르고 F#단조.

 대단히 어둡고 아름다운 악장이다. 현의 예리한 표현을 위해 현악 파트를 쪼갠 8성부의 현악을 쓴다. 민요풍의 슬픈 주제가 현에 의해 나타나며 슬프면서 다소 음산하게 전개가 된다. 현이 어우러져 내는 화성은 대단히 매혹적이다. 점차 곡은 고조가 되며, 중간에 목관과 타악이 나오는
 처절한 부분이 나온다. 이윽고 다시 분위기는 가라 앉으며, 목관과 하프의 인상적인 부분이 나오며 여린 현의 연주로 3악장을 마감한다.

 4악장 : 알레그로 논 트롭포 d단조

 관악의 현란하고 강렬한 유니즌에 이어, 강렬한 팀파니의 연타에 맞추어 격정적인 행진곡이 연주가 된다. 분노에 찬 듯한 행진은 장조로 전조가 되며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격렬한 탐탐과 베이스 드럼의 연타에 이어 처절한 총주를 연주한 후, 느리고 우울한 부분으로 연결이 된다.
 ("증언"에서는 이 부분을 강조하여, 비극을 묘사했다는 표현을 했다.)
 어두운 부분은 점차 고조가 되다가 행진곡의 리듬이 사이드 드럼과 함께 조용히 등장하고, 곧이어 격정적인 전관현악의 합주가 진행되며 베이스 드럼이 인상적인 격렬하고 눈부신 코다를 연출하며 곡이 끝난다.

 연주 시간은 대략 40-48분 정도가 걸립니다.
 (1악장 : 15-18분, 2악장 : 5분정도, 3악장 : 12-16분, 4악장 : 9-12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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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반 (아래글 수정,보충입니다) ●

 제가 클래식을 좋아한지 얼마 안되었던 89,90년 무렵에 특이하게도 라디오에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5번을 너무나도 자주 접할수 있었습니다. 비창 교향곡이나 월광 소나타보다도 말이죠. 그때 라디오에서 우연히 접한 비쉬코프(필립스)의 연주를 듣고 이 곡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3악장을 참 감명깊게 들었습니다. 황량하고 싸늘한 분위기 속에 배어있는 슬픔과 고뇌가 인상적이었죠. 이런 분위기는 그의 후기 4중주곡에 더 강한데 여기에선 그 곡들에서는 느낄수 없는 감미로움이 있는것 같습니다. CF에도 나왔던 4악장은 첨들었을땐 인민군 행진 같았지만 자주 접할수록 슬픈곡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명연으로 거론되는 음반을 말하면 므라빈스키(ERATO,victor,멜로디아), 콘드라신(BMG-Melodia),로스트로포비치(DG,TELDEC),프레빈(toshiba-EMI), 하이팅크(데카), 로제스트벤스키(BMG-Melodia), 예르비(chandos)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음반들은 평론가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은 녹음들인 만큼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기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녹음과 악단 기량이 따라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곡도 편성은 말러5번 같은 곡과 비교하면 훨씬 작지만 세부적인 울림이 잘 녹음되어야 음악이 효과적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옛날 녹음일수록 촌스럽다는 느낌이 좀 드는데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에서 촌스러움은 단점으로 작용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러시아 본토의 연주는 차원이 한 차원 위라고들 많이 하시는데, 아무래도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에는 러시아적인 요소가 많겠고 러시아 악단에게 있어서 쇼스타코비치는 친숙한 레퍼토리인 만큼 분명히 장점이 있습니다. 클라이막스에서 맘껏 내질러도 밸런스가 흐트러지지 않고 감정의 흐름이 자연스럽죠. 그렇다고 해도 한차원 위라고까지는 말할 필요는 없을것 같습니다.

 쓸데없는 얘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취향에 불과하니 참고만 해 주세요. 우선 염가음반을 들자면, 2 for 1으로 나온 로제스트벤스키 (BMG-melodia. 1,6,9번과 커플링), 프레빈(EMI-forte. 4번과 커플링), 슬로박 (NAXOS. 장당 5000원대의 가격. 중고를 찾으시면 2000원에 사실지도)이 있습니다.
 프레빈의 음반은 아예 우리나라에 수입이 안된거 같구(toshiba-emi에서 나온건 있습니다) 슬로박의 연주는 싸다는 장점밖에는 없습니다. 로제스트벤스키의 연주는 80년대 초반에 이루어진 연주인데, 시대를 감안하면 너무나 낙후되어 있는 녹음에 좀 불만이 있지만, 연주는 만족스러운 편입니다. 러시아 본토의 지휘자 답지않게 냉정하고 객관적인 연주입니다. 이 투포원 시리즈는 전집으로 나왔는데 녹음에만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같이 담겨있는 곡이나 수록 시간 등을 감안한다면 최고의 가격대비 성능을 자랑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녹음이 가장 아쉬운 연주는 콘드라신의 연주(BMG_Melodia)입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력한 다이나믹과 섬뜩할 정도의 밀어붙임, 그리고 타이트한 앙상블, 대단히 날카롭고 빠른 템포를 잡았지만 3,4악장에서의 디테일을 잘 잡아내는 이 녹음은 아마 5번 음반 중에서도 기록적인 연주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쇳소리가 나고 총주에서 찌그러지고 메마른 음향이 나오는 것은 정말 아쉽습니다. 녹음 때문에 놓치는 것이 많아서 듣고난 다음에 좀 허전함이 남습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훌륭한 연주이긴 하지만 뒤떨어지는 녹음과 지나치게 자극적인 해석을 감안하면 첨 이곡 음반을 사시는 분께는 좀 그렇습니다. 먼저 녹음이 받쳐주는 음반을 들어보시고 이 음반을 들어보시면 콘드라신 연주의 엄청남을 알 수 있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제가 추천하는 연주는 스베틀라노프(CANYON)와 하이팅크(DECCA), 막심쇼스타코비치(COLLINS)의 연주입니다. 하이팅크를 빼놓고는 잘 거론되지 않는 연주이지만 좋은 연주입니다. 다만 막심 쇼스타코비치 역시 이질적인 해석인 만큼 맨첨부터 듣기엔 좀 그럴수도 있겠네요. 스베틀라노프는 러시아 지휘자 중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거론되지 않는 지휘자입니다. 이제 70대의 고령인 만큼 활동할 날도 얼마 안 남은 지휘자입니다. 이 음반은 92년 녹음으로 일본 레이블에서 나온 음반입니다. 콘드라신이나 므라빈스키에 비해 조금은 답답한 진행을 보이긴 하지만 객관성의 측면에선 이 음반이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본토 지휘자의 관록있는 지휘, 그리고 뛰어난 녹음이 겸비된 좋은 음반입니다.
 하이팅크의 연주는 오래전서부터 널리 추천받는 연주입니다. 차분한 진행, 그렇지만 놓치는 것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말러"적인 요소를 도입한 3악장이 아름답습니다. (근데 정작 말러에서는...) 다만 이런 중립적인 관점의 연주에선 녹음이 잘 받쳐 주어야 효과가 빛이 나는데 그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레전더리 시리즈로의 재발매가 요망되는 녹음입니다.
 막심 쇼스타코비치는 바로 작곡가의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작곡과정을 피부로 느낄수 있던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연주가 극단적으로 어둡고 싸늘하고 냉소적입니다. 다른 지휘자들이 45분 전후에 연주하는 이 곡을 무려 54분이나 붙잡고 있습니다. 이 느림이 스케일감이나 세부 묘사에 치중한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주 자체의 톤은 대단히 명료하고 차갑습니다. 그리고 빠른 부분에서는 대단히 민첩하고 딱딱 끊어서 연주함으로써 냉소성을 부각합니다. 4악장에서의 느리고 고통스러운 중간 부분은 이 곡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곡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듯 합니다.

 이 밖에도 얀손스/빈필(EMI.커플링 되어 있는 실내교향곡 op.110a-현악4중주8번의 관현악판은 들을만 합니다), 예르비(chandos), 로스트로포비치(DG. Teldec)의 연주도 개성이나 활력은 부족하지만 "5번 교향곡" 자체를 듣는데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만 널리 알려진 연주인 번스타인의 연주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좀 아쉽습니다. 그리고 므라빈스키의 연주를 빼놓았는데, 이 사람이 6-70년대에 서방의 레이블에서 신뢰할 만한 녹음을 했다면, 이 곡 음반의 세계의 판도가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데 아쉽습니다.(차이콥스키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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