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ckner

브루크너 교향곡 9번 쥴리니/빈필/DG

romantiker74 2020. 4. 21. 19:43



Carlo Maria Giulini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녹음: 1988/06 Stereo, Digital
장소: Musikverein, Grosser Saal, Wien



명불허전이고 올킬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써야 할까 이 음반 듣고 나서는 다른 음반을 듣기가 힘들 정도이다. 성악곡에서 정말 잘 부르고 음색도 어울리는 가수가 특정 노래를 부른 것을 들었을 때 이런 느낌을 받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기악곡에서 이렇게 압도당하기는 쉽지 않은 데 쥴리니는 거장이고 빈필은 훌륭하다. 멋지게 울려퍼지는 금관과 다양한 표정을 아름답게 구사하는 현의 소리가 입체적으로 담긴 녹음도 훌륭한 것 같다. 도입부의 긴장감도 훌륭하지만 1주제의 포르티시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는 각별하다. 2주제의 유장한 흐름도 훌륭한데 조금 느린 템포에서 늘어지지 않으면서 장대한 느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쥴리니의 특기인 것 같고 빈필과 함께한 교향곡 9번에서 가장 잘 살아난 것 같다. 2악장 역시 묵직한 템포인데 금관과 팀파니가 강렬한 스케르초를 구축해 나가고 트리오는 빈필의 싱그러운 소리가 흘러나와 대비를 만들어준다. 조금 삐딱한 시각에서 보자면 번스타인과 쥴리니의 연주의 경우 일단 빈필이 너무 훌륭했고 브루크너가 4악장을 완성하지 못해서 3악장까지 연주하면서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4악장까지 완성된 상태에서 기승전결 구조였으면 반트나 요훔같은 게르만 브루크너 전문가가 더 좋은 결과를 내 놓았을 지도 모르지만 현재 상태로 봤을 때는 쥴리니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3악장 역시 기본적으로 유장한 흐름을 보여준다. 중간에 조성이 불안한 부분이 있어 잘못하면 늘어진다는 느낌을 주기 쉬운데 자연스러운 흐름을 잘 만들고 있다. 조성이 흔들리는 부분에서 금관이 브루크너가 의도했던 것 같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잘 보여주고 이어지는 평화로운 부분에서는 관조적인 느낌을 잘 살려주었다. 브루크너 만년의 마지막 작품이라 큰 스케일이 느껴지는 유장한 흐름이 잘 어울리고 첼리비다케의 경우 그동안의 선입견 때문인지 나머지 악장의 템포를 다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스케르초 악장의 템포에 거부감이 느껴지고 번스타인은 너무 말러 교향곡 9번 같은 느낌이라 감동은 받았지만 정답은 아닌 것 같고 결국 이 복잡 미묘한 방정식의 답은 쥴리니로 흘러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