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ckner

브루크너 교향곡 8번 c단조

romantiker74 2020. 3. 23. 18:30




Bruckner, Symphony No. 8 in c minor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은 교향곡 5번과 함께 진입장벽을 느꼈던 작품이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을 듣기 전까지의 전적은 대충 이랬다. 한동안 교향곡 4번 이외의 작품을 아는 바 없다가 인발이 연주한 7번을 듣고 브루크너의 다른 작품들도 들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요훔이 지휘한 5, 6번이 커플된 음반을 장만하고 6번은 쉽게 들었는데 5번은 듣다가 좌절한 상태였다. 당시에 인터넷도 아닌 PC 통신을 달구던 작품이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이었는데 대체로 음반값이 비싸 고민하고 있었다. 우연히 레코드 가게에서 저렴하게 낙소스에서 나온 틴트너의 음반을 발견하고 집에서 틀어봤다. 커플된 교향곡 0번은 가벼웠으나 교향곡 8번은 교향곡 5번에 이어 두 번째로 좌절했다. 시간이 지나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의 2악장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왔고 브루크너 교향곡에 판본이 다양하게 존재함을 간파했고 교향곡 3번을 보았을 때 개정판이 원판에 비해 짧고 간결해서 듣기 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다시 요훔의 8, 9번 커플 음반을 장만해서 교향곡 8번을 처음부터 끝까지 무리없이 들어볼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이 작품이 연주 효과가 좋은 훌륭한 작품임을 깨닫고 아르농쿠르, 벨저뫼스트의 음반을 구입해서 들으면서 작품을 좋아하는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1884년 2월 바그너 협회에서 피아노 연탄으로 교향곡 7번을 공개하고 1883년부터 니키쉬와 1884년 12월 예정인 교향곡 7번의 라이프치히 초연을 준비하며 브루크너는 교향곡 8번의 작곡에 착수하게 된다. 당시에 브루크너는 빈 대학과 빈 콘서바토리의 교수직을 맡고 있어, 보통 여름방학 기간에 작곡에 몰두했는 데 교향곡 8번은 1884년 여름 방학을 맞아 착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84년 10월 1악장의 스케치를 완성했고 아다지오 악장의 작곡에 들어갔으나 12월 교향곡 7번의 초연 준비로 잠시 미뤄 두었다가 2월 아다지오의 스케치까지 완성하게 된다. 이후에 1885년 8월에 네 악장의 스케치를 완성한다. 이후에 1885년 10월 스케르초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시작으로 1887년 4월 피날레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일단 완료한 후 수정을 거쳐 1887년 8월 초고를 완성하게 된다.
  브루크너는 1887년 8월에 교향곡 8번을 완성한 후 10월에 교향곡 7번의 뮌헨 전곡 연주를 지휘한 바 있었던 헤르만 레비에게 교향곡 8번의 총보를 보여주었다. 브루크너는 1885년 레비가 공연한 자신의 교향곡 7번 연주를 듣고 크게 감명받아 8번 교향곡이 완성되면 레비에게 초연을 의뢰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작품을 검토한 레비는 초연을 거절하며 많은 개정을 제안하여 작품에 자신감이 넘쳤던 브루크너는 극단적인 생각을 할만큼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정신을 추스르고 브루크너는 8번 교향곡의 개정 작업과 더불어 전작들까지 대대적인 수정에 돌입하게 된다. 이를 2차 브루크너 개정 파동이라고도 부른다. 전작들의 개정작업 때문에 정작 8번 교향곡의 개정작업은 지연되어 실질적으로 1889년에야 이루어졌으며 1890년 최종적으로 완료되었다. 브루크너는 교향곡 7번의 성공으로 작곡가로서의 인지도를 확보하였고 오스트리아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헌정되어 황제가 인쇄 비용을 부담해 주게 된다.
  라이프치히에서 교향곡 7번을 초연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던 브루크너는 빈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교향곡 8번의 초연을 알아보았다. 처음에는 헤르만 레비에게 의뢰하여 뮌헨에서 초연하려 하였으나 레비가 초고의 초연을 거절한 바 있고 젊은 지휘자였던 니키쉬가 교향곡 7번을 성공적으로 초연한 것에서도 영향을 받아 1890년 완성한 수정본은 젊은 지휘자였던 펠릭스 바인가르트너에게 맡겨 보았다. 그러나 바인가르트너는 이 작품의 연주에 어려움을 느껴 초연 일정을 지연시켰고, 브루크너도 바인가르트너의 능력을 의심하게 되었다. 결국 이 작품은 1892년 12월 한스 리히터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되었다. 초연에 부담을 느꼈던 빈에서 초연이 되었지만 공연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작곡 과정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작품은 판본과의 전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완전한 자필 악보으로 출반된 판본은 1887년판과 1890년판 두 가지가 있으며, 두 가지 판본 모두 브루크너 사후 노박이 출판하였다. 이 외에 샬크 등 제자들이 주도하여 수정되어 1892년에 최초로 출판된 1892년판 (샬크판), 로베르트 하스가 1890년판을 바탕으로 제자들의 압력 때문에 삭제되었다고 판단한 부분을 복원한 하스판이 있다. 완성된 판본 이외에도 브루크너의 대개의 작품과 같이 스케치들도 많이 존재한다.


1887년 판본 (초고)
  이 판본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브루크너가 완성한 판본이다. 오랜동안 연주되지 않고 묻혀 있었다. 레오폴트 노바크가 1972년 이 판본을 출판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에 개정된 1890년 판본과는 큰 차이가 있다. 1, 3악장은 작품의 전개가 크게 달라졌으며, 2악장의 트리오는 거의 완전히 새로 쓰여졌다. 4악장이 그나마 원래의 형태와 유사한 편이지만 적지 않은 부분들이 삭제되었다. 2관편성으로 되어 있고 1890 판본에서 3관편성으로 확대되었다.
  1972년 노박이 출판한 이후에도 이 판본은 상대적으로 자주 연주되지는 않는다. 1890년 판본이 상대적으로 매우 우수하기 때문에 현재도 대부분 1890년 판본이나 이 판본을 기반으로 한 하스판이 연주되고 있다. 음반으로는 틴트너, 인발의 음반이 이 판본으로 연주되었다.


1890년 판본 (제2고)
  1887년에 완성된 초고를 본 헤르만 레비가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자 브루크너는 철저한 개정작업에 착수하여 3년이 지난 1890년 개정을 완료하였다. 1887년 판본과는 차이가 크다. 데릭 쿡과 같은 학자들은 1890년판이 브루크너가 샬크와 같은 동료들에게 부담을 받아 개작한 것이라고 본다. 쿡은 이를 심지어 "브루크너-샬크판"이라고 부른다. 하스 또한 개정 과정에서 제자들이 브루크너에게 여러 부분에서 삭제할 것을 요구한 외압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이유로 하스는 이 교향곡의 원전판을 편찬할 때 1890년 판본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1887년 판본에서 삭제된 부분 중 일부를 다시 복원하였다. 반면 노박은, 1890년 판본의 자필 악보에서 브루크너 이외의 필기체가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브루크너의 친구들과 동료 작곡가들의 증언에 따르면 브루크너는 외부인의 간섭을 극도로 꺼려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노박은 1890년에 개정이 완료된 1890년 자필악보를 그대로 편찬하여 1955년에 출판하였다.


1892년 판본 (개정판, 샬크판)
  이 판본은 브루크너가 직접 완성한 1890년 판본(제2고)에 제자인 샬크와 오버라이트너가 약간의 수정을 가한 판본이다. 브루크너 생전인 1892년에 출판되었으며, 1944년 하스판이 출판되기 전까지 브루크너 교향곡 제8번의 유일한 악보였다. 이 판본의 편찬을 주도한 인물인 샬크의 이름을 따서 '샬크판'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지휘자들의 선택을 별로 받고 있지는 않고 있다.


1악장 (Allegro moderato) 
현악기의 트레몰로로 시작되어, 저음현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제1주제가 제시된다. 제1주제의 리듬 및 동기는 전곡을 지배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리듬이 어딘지 교향곡 4번을 연상시키는 것 같다. 제2주제는 상승음형으로 제시되는데 2+3의 브루크너 리듬을 갖고 있어서 교향곡 4번 1악장 1주제를 연상시킨다. 2주제가 여러 조성으로 전조되고 변형되어 제시되다가 오보에의 경과구가 흐르고 현악기의 피치카토를 배경으로 금관의 3주제가 나타난다. 바쁜 움직임 뒤에 강렬한 하강 음형이 등장하여 긴장감을 조성하다가 화려한 합주로 제시부가 마무리된다. 재현부에 1악장의 클라이맥스가 구축되어 있는 데 브루크너 자신은 ‘죽음의 예고’라고 했다고 한다. 클라이맥스를 지나 1주제가 스러지는 형태로 제1악장이 끝났고 브루크너는 이 마무리를 ‘체념/죽음의 시간’이라고 했다고 한다.


2악장 Scherzo (Allegro moderato)
베토벤의 교향곡 9번처럼 브루크너는 교향곡 8번과 9번에서 스케르초를 2악장에 배치했다. 최면적이고 저음현의 중독성있는 멜로디가 교향곡 7번의 스케르초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위로 흐르는 바이올린의 선율은 e단조 미사의 크레도에서 따왔다고 한다. 브루크너는 교향곡 8번의 스케르초를 완성한 후에 독일의 미헬이라고 했다고 한다. 독일의 미헬(Deutscher Michel)은 미국의 엉클 샘이나 영국의 존 불처럼 독일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보통 고깔 모자를 쓰고 졸고 있는 아저씨 내지는 소년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이네는 러시아는 땅을 가졌고 영국은 바다를 가졌고 독일은 꿈꿀 수 있는 하늘을 가졌다고 했다고 하는 데 브루크너는 미헬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자 했던 것 같다. 세상의 영화는 다른 사람의 몫이지만 본인은 악보 속에 자신의 세계를 마음껏 펼쳐 놓았다고 믿는. 2악장은 판본을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악장인데 스케르초는 거의 같지만 트리오가 다르다. 1890년 판의 트리오에는 하프가 들어가면서 3악장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변했다. 트리오에서 브루크너는 미하엘이 꿈꾸는 시골을 표현했다고 한다.


3악장 Adagio (Feierlich langsam, doch nicht schleppend)
독일의 미헬이 꿈꾸는 풍경은 3악장에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것일지 모르겠다. 개정판에서 브루크너는 2악장의 트리오를 3악장과 조금 더 비슷한 분위기로 만들기도 했다. 본인은 시골이라고 했지만 그려지는 이미지가 포근하고 전원적이라기 보다는 전설 내지는 환타지 문학이 연상되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가까운 것 같다. 하프의 아르페지오 위로 펼쳐지는 선율 때문인지 이 악장을 듣고 있으면 바그너가 로엔그린에서 그려낸 호수 내지는 반지의 제왕 속의 샤이어 같은 그림을 그리게 된다. 물론 이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처음에는 길었고 끝까지 듣기 힘들었다. 전체적으로 론도 풍의 구조를 갖고 있지만 강렬한 클라이맥스를 구축해 놓아서 좋은 연주를 들으면 나무와 숲의 아름다움을 모두 느끼게 해 준다.


4악장 Finale (feierlich, nicht schnell)
3악장이 조용히 끝나면 ‘자, 가자!’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며 팀파니의 강렬한 비트에 얹혀진 트럼펫의 팡파르를 기대하게 된다. 브루크너는 이 부분을 카자흐 기병 내지는 러시아 군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팡파르와 함께 금관의 강렬한 1주제가 나오고 슬픈 노래를 하는 듯이 서정적인 2주제가 나온다. 3주제는 살짝 무표정한 바로크적인 느낌의 행진곡 분위기를 갖는다. 전개부에서 금관이 1악장 1주제를 회상하고 쉼표를 거쳐 코다로 들어간다. 혼으로 1주제를 다시 연주하고 2악장의 주제가 등장했다가 1악장의 주제가 다시 등장하며 클라이맥스를 구축하고 모든 악기가 1악장의 하강 동기를 연주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