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ckner

브루크너 교향곡 5번 B장조

romantiker74 2012. 10. 16. 09:20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은 브루크너에게는 작은 성공이었고 우여 곡절이 있었지만 첫 번째 성공을 안겨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우여 곡절 때문에 브루크너는 꽤나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향을 떠나 빈에 와서 어렵사리 자리를 잡았지만 보수는 없거나 시원치 않았고 직장에서는 각종 문제에 휘말렸고 회심의 작품이었던 교향곡 4번의 초고는 빈필에게서 또 연주 거부를 당해 어려운 경제 상황에 숨통을 틔워 줄 것으로 기대했던 작곡비마저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돌파구를 찾던 브루크너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다시 분석했다고 한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5번은 그 결과로서 1875년 초부터 1년 남짓한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교향곡을 9번까지 남긴 여러 작곡가에게 5번은 전환점이 되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브루크너와 마찬가지로 9번까지 교향곡을 남긴 베토벤과 말러가 처절한 시련을 이겨내고 화려하게 승리하는 교향곡 5번을 만들어 내었다면 브루크너는 그에게 닥쳐온 시련을 장엄한 카톨릭 성당 같은 교향곡을 작곡하여 신에게 봉헌하는 것으로서 승화시킨 것 같다.

베토벤의 교향곡을 분석했다고 하지만 이 작품에서 특별히 베토벤의 느낌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느 CD 속지에서 4번 교향곡까지는 4악장에서 이전 악장의 주제를 인용하는 부분이 악장 전체에 퍼져 있지만 5번 교향곡의 경우 베토벤 교향곡 9번처럼 악장이 시작하는 부분에 집중되어 있고 4악장에서 새로 제시한 코랄 풍인 주제의 지배력이 강한 면에서 통하는 면이 있다는 해설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렇기는 하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 작품은 어느 작곡가의 영향보다도 가장 브루크너의 개성이 강하게 투영된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명재 씨가 레코드 포럼에 연재한 글에는 이 작품을 4개의 첨탑이 있는 고딕 성당 같다는 표현을 읽은 것 같고 박진용 씨가 연재한 글에서는 중세, 카톨릭, 코랄을 키워드로 제시했던 기억이 난다. 많은 해설에 나타나는 이야기로 작곡가 자신은 이 작품에 대해 ‘환상곡 풍의 교향곡’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하는 데 이 작품을 듣고 있으면 정말 파이프 오르간을 위한 장대한 환상곡을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해 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브루크너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시킨 교향곡 5번에 대해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했던 것 같다. 이는 교향곡 5번의 초연을 뒤로 미룬 채, 바로 앞서 작곡했던 2번, 3번, 4번 교향곡의 대대적인 개정 작업에 돌입했던 것에서도 읽을 수 있는데, 이전에 작곡한 작품에도 5번 교향곡을 작곡하면서 얻은 아이디어를 넣어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고 개정의 결과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엇갈리지만 교향곡 4번은 성공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불행히 브루크너 자신은 살아생전에 그렇게 만족스러워 했던 이 작품을 들어보지 못하고 만다. 작품이 완성된 1878년으로부터 16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인 1894년에야 처음으로 연주할 기회를 잡게 되었는데, 지휘를 맡은 브루크너의 제자 프란츠 샬크가 4악장의 많은 부분을 잘라 내고 바그너 풍으로 곡의 일부를 수정해서 공연을 했다고 하고 1895년에는 뢰베의 지휘로 연주가 되었다고 하는데 브루크너는 이 두 번의 연주 모두 건강이 좋지 않아 참석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일에 대해서 몇몇 해설서에는 자신이 아끼는 작품을 무단 변경한 것에 대한 무언의 항의라고 하기도 하고 연주회가 열린 장소는 빈에서 좀 떨어진 그라츠와 부다페스트라 (물론 요즘에는 빠른 기차 타면 두세 시간이면 가겠지만) 병약한 몸을 이끌고 참석하기는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브루크너가 이 작품을 듣거나 직접 연주에 관여하지 않아서인지 이 작품은 크게 고친 적이 없고 1876년 초고를 1878년에 미세한 수정을 가한 상태에서 마무리했다. Haas판과 Nowak판이 있지만 두 판의 차이는 거의 없어 판본 사이의 차이에 귀를 기울이며 들을 기회는 없다. 초연 때 샬크가 개정한 악보는 1896년 도블링거 사에서 출판이 되었는데 크나퍼츠부쉬나 로제스트벤스키의 음반에서 들을 수 있다.

1악장은 저음현의 피치카토로 시작되어 고음현이 멜로디를 그려내며 순차적으로 합류하는 서주로 시작한다. 이 서주가 재현부에 반복되면서 지휘자의 해석이 갈라지는 단초가 된다. 재현부에서는 이미 서주라고 할 수 없으니 서주에서만 느리게 연주하고 재현부는 주변과 빠르기를 맞추는 해석, 재현부에서도 서주처럼 느리게 연주하는 해석, 아니면 서주부터 빠르게 연주해 버리는 해석이 있는 데 길고 어떻게 들으면 좀 어려워서 진입 장벽이 있는 이 작품에 이런 포인트라도 바라보면 이 작품에 성공적으로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참고적으로 필자는 교향곡 4번, 7번 이후 처음 접한 작품이 이 작품이었고 몇 번의 실패 끝에 처음부터 끝까지 이 작품을 들을 수 있었다.

2악장은 교향곡 7번과 함께 브루크너의 가장 아름다운 느린 악장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1악장과 마찬가지로 현의 피치카토로 시작해서, 그 위로 오보에의 애조를 띈 멜로디가 덮어지고 잠시 현과 클라리넷의 대화가 이어진 후에는, 드디어 현악으로만 이루어진 아다지오가 그 위용을 드러내는데 듣고 있으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그랑 파르티타를 보고 느끼는 걸로 그려진 것 같은 정화감을 이 악장을 들으면 느낄 수 있는 데 불행히 모차르트의 그랑 파르티타와 달리 진입 장벽이 좀 있어서 베토벤 9번 3악장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인내심이 좀 필요하다.

브루크너의 스케르초는 그나마 짧고 다른 악장에 비해 덜 복잡한데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대신 이 작품의 스케르초는 1악장의 주제가 살짝 녹아 있다는 것이 특징일 것 같다.

4악장이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명재 씨의 해설처럼 4악장의 피날레를 들으면서 느껴지는 강한 해방감을 느끼기 위해 이 작품을 듣는 지도 모르겠다. 브루크너 교향곡 4악장에는 앞선 악장의 주제들이 자주 인용되는 데 이 작품은 베토벤 교향곡 9번 처럼 그 부분이 악장 초반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는 모차르트의 교향곡 41번이나 멘델스존의 교향곡 5번 4악장처럼 거대한 스케일의 코랄 주제와 이중 푸가로 구성되는데 이명재 씨의 표현처럼 앞선 주제와 거미줄처럼 연결되면서 마지막 코랄이 울려퍼질 때 그 순간까지 잘 참고 들어왔고 브루크너의 진입장벽을 어느 정도 극복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큰 감동을 느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