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ckner

브루크너 교향곡 6번 A장조

romantiker74 2020. 2. 25. 18:09

알프스 몽블랑 이미지 검색결과


브루크너 교향곡 6번에 관한 글을 써 보려고 하는 데 4번을 쓸 때 만큼이나 잘 안되었다. 둘 다 좋아하는 작품인데 4번은 나 말고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작품이라면 6번은 별로 인기 없는 데 내가 좋아하는 작품. 둘 다 어렵지만 후자가 좀 더 글을 쓰기 어려웠다. 교향곡 6번의 CD속지에 자주 적혀 있는 내용으로 브루크너의 교향곡 6번은 2번과 함께 가장 인기 없는 교향곡의 하나로 꼽힌다. 그러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곡이 인기가 없어서 안타깝다는 설명도 많이 붙어 있기는 했다. 인기가 없는 이유로 곡이 짧아서라는 말도 있고 별로 브루크너답지 않아서라는 설명도 있다. 

평론가들의 의견은 이렇다.

Newin: Bruckner 교향곡의 많은 특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나머지 교향곡들에 비교해 가장 이질적이다.

Redlilch: Bruckner의 지지자, 반대자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본인 교향곡의 스타일을 지워버렸다.

Robert Simpson: 브루크너 교향곡의 미운 오리 새끼이지만 대담함과 미묘함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뛰어나며 브람스에게도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는 고전적인 형태를 갖고 있다. (실제로 브람스는 2, 3악장만으로 진행되었던 이 작품의 초연에 참석하여 평소와 달리 호의적인 평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 밖에 브루크너 마니아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대작 5번과 대중적인 인기를 갖고 있는 7번 사이에 끼어있는 애매한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글쎄, 길이가 짧아서라면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은 길이가 길어서 듣기 어려운 면이 있는데 왜 감상자들은 이렇게 변덕스러울까하는 생각도 들고 브루크너답지 않다는 것도 조금은 의아해서 거꾸로 이런 작품을 브루크너가 아니면 누가 쓰겠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5번, 7번 사이에서 가렸다는 말은 조금 이해가 가기도 한다. 마치 슈만이 북구의 두 거인 사이에 있는 그리스 미녀같다고 했던 베토벤 교향곡 4번처럼.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이렇게 인기가 없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남들이 별로 찾지 않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비경을 하나 알고 있는 것 같은 흐뭇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작품의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는 두 가지 정도인 것 같은데 첫 번째는 이 작품이 상대적으로 짧고 선율적이라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교향곡 4번과 7번을 접한 후 브루크너를 탐구해 보려고 요훔의 5, 6번 커플 음반을 장만하고 들어보면서였는데, 당시 5번은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하기가 버거웠던 반면 6번은 지루해질 틈이 없이 감상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1악장의 멜로디는 어딘지 4번 교향곡을 연상시키기도 했고 4악장은 4번보다도 훨씬 명료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 이유는 브루크너를 본격적으로 듣게 된 계기가 말러의 음악에 빠진 것이었는데 교향곡 3번과 함께 6번은 연주에 따라서는 말러를 연상시키는 극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교향곡 3번과 6번은 말러와도 실제 관계가 있는데 3번은 초연 당시 말러가 관객으로 있었고 공연장은 썰렁했고 청중들의 반응도 별로 좋지 않았지만 말러는 좋아했었고 브루크너에게 작품 너무 훌륭하니 고치지 말라고 전했다고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말러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은 브루크너는 교향곡 3번을 여러 번 고치게 된다. 교향곡 6번의 경우 브루크너 사후에 말러가 전곡 초연을 했다. 이 사건도 해설서에서 약간 이견이 있는데 작품이 길다는 이유로 많은 부분을 잘라내고 공연했는데 누군가가 여기저기 잘라낸 무허가 개정판 원고를 말러에게 전달했다는 의견과 말러가 여기저기 잘라내어 곡을 줄여 공연했다는 설이 있다.  

마치 말러의 교향곡을 전부 다 즐기게 된 다음에도 교향곡 1번이 늘 매력적으로 느껴지듯이 진입장벽이 어느 정도 있었던 교향곡 5번과 8번을 제법 즐겨 듣게 된 지금에도 브루크너의 교향곡 6번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아마 짜릿한 느낌을 주는 피날레와 물론 브루크너의 작품임은 확실하지만 연주에 따라 바그너처럼 들리기도 말러처럼 들리기도 하는 마력이 이 작품을 질리지 않고 가끔씩 CD장에서 꺼내게 내지는 어디선가 이 작품을 연주한다고 하면 그날의 일정을 확인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작품으로 돌아오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 탄생한 5번 교향곡은 브루크너에게 형식에 대한 만족감을 주었던 것 같고 5번 교향곡을 작곡한 이후에 교향곡 3번의 초연이 실패하기는 하였지만 대체로 브루크너는 어려운 문제들이 하나씩 풀려나가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작품을 작곡하던 시기에 브루크너는 헬메스베르거 현악 4중주단의 의뢰를 받아 작곡한 현악 5중주곡 F장조를 작곡하게 되고 4번 교향곡을 개정하여 무대에 올려 제법 호평을 받게 된다. 그리고 스위스 몽블랑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등 브루크너가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기쁨을 느끼면서 탄생한 작품이 6번 교향곡이라고 한다.

이 곡은 1883년 2월에 초연될 기회가 생겼는데, 초연하고 싶다고 신청해온 빈 필의 지휘자 빌헬름 얀은 곡이 길다고 하며 -브루크너의 교향곡 중에서 초기 일부 작품을 제외하면 가장 짧은 편에 속할뿐더러 브람스의 교향곡들에 비해 별로 길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 2 악장과 3 악장만을 연주하겠다고 했고, 브루크너도 그것을 양해하여 그 형태로 그것도 꽤 개정되어서 연주되었다고 한다. 전체적인 반응은 나쁘지 않았고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이해할 수 없다’고 평했던 브람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물론 안티 바그너로 유명한 한슬릭은 이 작품에 대해서도 악평을 했다고 한다. 전곡의 초연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브루크너의 사망 후 2년 반 정도 지난 1899년 2월 26일에 말러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니에 의해 연주되었는데 청중들의 반응은 그렇게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브루크너의 6번 교향곡은 5번 교향곡과 함께 판본의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운 작품이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브루크너가 살아생전에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완벽을 향해 노력하는 본인의 의지도 있었겠지만 곡이 전곡 초연 과정을 겪으면서 여러 사람에게 노출되고 그 사람들의 의견이 쏟아지면 부지런히 펜을 들곤 했으니 두 작품은 그런 영향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작품은 모두 장조를 택하고 있고 6번 교향곡 스케르초 악장의 트리오에서 5번 교향곡 1악장 1주제를 인용하고 있기도 하고 두 작품 모두 브루크너의 중기 작품으로 여겨지지만 곡의 느낌을 놓고 볼 때 두 작품은 유사하다기보다는 대조적인 면이 많다. 

이 곡의 출판은 1901년 브루크너의 제자인 하나이스의 편집으로 이루어졌는데 브루크너의 자필 원고와는 꽤 차이가 있다고 하고 1937년 브루크너의 자필 원고를 바탕으로 한 하스판이 출판되었다. 1952년에는 노바크에 의한 원전판이 나왔는데 앞서 출판된 하스판과의 차이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1악장(Majestoso) 셋잇단 음표 리듬을 바탕으로 등장하는 1주제는 장조의 교향곡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브루크너의 다른 교향곡처럼 자욱한 안개가 걷히면서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는 뭔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스크로바체프스키가 지휘한 RSO 자브뤼켄의 연주가 담긴 CD의 해설서에 보면 이 작품을 브루크너의 ‘전원 교향곡’이라고 하고 있는데 5번 교향곡에서 안개가 걷히고 드러난 것이 거대한 고딕 성당이었다면 이 작품에서 안개가 걷히고 나타난 모습은 브루크너가 여행했던 몽블랑의 모습일지 모르겠다. 해설서에 따라서는 6번 교향곡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같은 어둠에서 광명으로의 구도이고 1악장은 장조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느낌이라고 되어 있기도 하지만 작곡 배경을 듣고 접하면 2주제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여행을 하는 해방감이나 휴식하는 심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3주제는 브루크너 교향곡의 3주제가 그러하듯 팡파르가 울려퍼지는 코랄로 되어 있고 브루크너의 다른 교향곡들에 비해 6번 교향곡의 3주제는 좀 더 축제적인 느낌을 준다. 연주를 들을 때는 도입부의 셋잇단 음표를 어떻게 들려주느냐가 인상을 많이 결정하고 2주제의 서정성을 강조할지 아니면 조금 빠르게 연주할지에서 해석이 갈리고 3주제에서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녹음의 수준이 귀에 들어오게 되는 것들이 포인트가 되는 것 같다. 


제2악장(Adagio Sehr feieirlich) 브루크너의 교향곡 6번은 2악장도 소나타 형식으로 처리되어 있다. 2악장에 소나타 형식을 채용하는 것은 그리 흔한 선택은 아닌데 브루크너는 교향곡 0번, 00번에서 시도를 했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햄머 클라비어도 2악장에 소나타 양식을 채용했다고 한다. 양식을 보았을 때는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기보다는 구조적인 작품을 만들려는 시도가 느껴지기도 한다. 브루크너 자신이 이 악장에다가 '장중하게'라고 기입해놓고 있는데 고요한 어둠이 깔리는 느낌의 현의 1주제로 2악장이 시작된다. 하향음계로 만들어진 1주제는 살짝 바로크적인 느낌을 준다. 2주제는 유려한 현의 상승 음형과 혼의 에코로 따뜻한 아름다움을 준다. 2주제 정말 아름다운데 음산한 1주제 뒤에 이어지면서 따뜻한 느낌이 극대화되는 것 같다. 1악장에서는 코랄의 3주제를 많이 활용하는데 2악장에서는 장송행진곡풍의 3주제를 선택했다. 따뜻한 느낌의 2주제에 이어지는 무거운 장례행렬같은 3주제를 듣고 있으면 브루크너가 이 작품을 쓸 때까지 겪었던 인생 역정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2주제도 마치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진 무언가를 보고 그때는 고생이었지만 지나보면 추억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제3악장(Scherzo Nicht schnell-Trio. Langsam) 스케르쵸이지만, 브루크너 자신이 '너무 빠르지 않게' 연주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스케르초는 3박자 리듬의 저음현을 깔고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클라이맥스를 만들어 가는데 개인적으로는 스케르초 주제가 선율적이지 않아 교향곡 4번 같은 작품에 비해 아쉽게 생각하는데 애호가 분들은 좋아하시기도 하는 것 같다. 물론 선율적이지 않은 스케르초는 브루크너가 의도했을 것이고 세련되고 강렬한 인상을 주면서 트리오와의 대비효과도 노렸을 것이다. 불행히도 음악은 머리로만 들을 수 없기에 내지는 촌스러운 취향을 갖고 있기에 개인적인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스케르초 사이에 현, 호른, 플륫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트리오가 들어가 있다. 현의 피치카토로 2박자의 랜틀러 리듬을 연주하고는 플륫으로 교향곡 5번의 1악장 1주제를 인용하고 있는데 거의 원형에 가깝게 인용해서 금방 교향곡 5번을 떠오르게 만든다. 이전 악장이 아닌 이전 작품의 주제를 인용한 시도는 매니아를 위한 선물 같기도 하다. 


제4악장(Finale. Bewegt, doch nicht zu schnell) 전체적으로 정열적인 악상의 전개가 눈부시다. 율동적으로 연주하되 너무 빠르지 않게 하라는 지시가 되어 있어서 적당히 빠르고 적당한 율동감을 갖춘 역동감을 요구하고 있다. 스케르초가 끝나고 비올라와 저음 현이 피치카토로 깔아주면서 바이올린의 화려한 하향음으로 악장이 시작되면 벌써 신나기 시작한다. 여기에 혼과 트럼펫의 팡파르가 들어오면서 분위기는 고조된다. 다음으로 폴카 풍의 2주제가 등장하고 리듬감 있게 출발해서 서정적으로 전개되어 나간다. 1악장과 같은 금관 코랄의 3주제가 나오는데 여기서도 지휘자와 악단에 따라서는 파이프오르간같은 음향을 만들어 내서 내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든다. 말러 교향곡 1번처럼 이 작품의 압권은 4악장의 코다일 것 같다. 정신없이 빠른 현으로 들어가서 1악장의 1주제를 회상하는 듯한 금관의 화려한 팡파르로 마무리되는 코다를 듣고 있으면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의 코다와는 또 다른 형태의 음반으로 듣고 있어도 지휘해보고 싶은 카타르시스를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