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ckner

브루크너 교향곡 0번 d단조

romantiker74 2005. 3. 20. 10:01



 

이 작품은 습작교향곡을 작곡하고 키츨러의 수업을 졸업한 후 내놓으려고 하던 회심의 역작이었을 것이다. F단조 교향곡이 키츨러에게 썩 좋은 평을 이끌어내지는 못해서인지 이 작품은 전작에 비해 규모도 커졌고 독창적이다. 이 작품과 교향곡 1번중에 어떤 작품이 먼저 작곡되었는 지도 논란거리인 것 같은 데 대체로 처음 작곡은 0번이 먼저였지만 교향곡 1번 완성후에 한번 개작을 거쳤다는 쪽으로 정리되고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에 왜 0번이란 번호가 붙었는 지도 CD속지마다 나오는 이야기 거리인데 이 작품을 오토 데소프라는 지휘자에게 초연을 하려고 보여 주었을 때 그가 '저, 근데요, 제1주제는 어디에 있죠?'라는 질문을 해서 세상에 발표할 첫 작품을 놓고 조마조마해 하고 있는 브루크너는 충격을 받고 이 작품의 초연도 취소하였다고 한다. CD속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그렇게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은 아니라고 끝을 맺고 있다.

1악장은 저음현이 행진곡 리듬을 연주하면서 바이올린이 하향음을 그리면서 시작한다. 서주같아 보이지만 그대로 제1주제가 되어버린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같아 보이기도 하는 데 제1주제로 보기에는 선율이 좀 없어 보인다. 어떻게 들으면 관악기 쪽에서 나올법한 멜로디가 빠지고 밑에 깔린 배경만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브루크너는 거의 비슷한 주제를 교향곡 3번 1악장 시작부분에 배경으로 쓰고 있다.) 이쯤에서 오토 데소프가 브람스의 교향곡 1번 스코어를 받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 지가 궁금해진다.(이 지휘자는 칼스루에에서 브람스의 교향곡 1번도 초연했다.)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의 1악장의 시작도 그리 선율적이지는 않은 것 같은데. 2주제는 당김음으로 연결되어 있다. 탄호이저 서곡에서 웅장한 금관의 코랄 뒤로 움직이는 현의 리듬하고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브루크너 교향곡 0번의 시작부분을 듣다보면 노래없이 반주만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틴트너와 바렌보임의 속지를 쓴 로버트 심슨은 이 문제의? 1악장을 가장 완성도가 높은 악장으로 평가하고 있고 나도 그 생각엔 동의한다. 1악장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은 발전부 마지막 부분에 현이 화음을 펼치면서 금관이 울려퍼지는 부분인데 정말 오르간 소리를 듣는듯하다. 1악장의 코다가 교향곡 6번의 4악장 피날레와 비슷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 데 브루크너의 코다가 서로 비슷한 경우가 많아서 이게 꼭 그 작품과 비슷한 지는 잘 모르겠다.
2악장은 교향곡 해설이나 CD속지에서 이 작품을 통틀어 가장 완성도가 모자라는 악장으로 기술하고 있다. 틴트너의 해설에 보면 브루크너가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내가 2악장을 얼마나 자네가 원하던 것처럼 잘 고쳤는 지 보면 놀랄걸세.'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매우 안타깝다고 되어있다. 개정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 지 궁금하기는 한데 틴트너가 그렇게 말하면서까지 이 악보로 연주한 것을 보면 개정되기 이전의 원고는 출판되지 않은 듯하다. 2악장 도입부는 말러 교향곡 4번의 3악장처럼 숨을 죽이듯 시작하고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가서 클라이맥스를 만들고 조용히 끝난다. 틴트너가 2악장에서 1악장의 제2주제를 살짝(slightly)회상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는 데 1악장 제2주제에서 당김음을 다 빼버리면 비슷할 것 같다. 바렌보임 CD속지에 보면 보로딘이 연상된다고 하는 데 보로딤의 음악을 많이 접하지 않아서인지 얼른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3악장은 금관의 도입 이후에 현이 무곡 리듬을 연주한다. 트리오는 서정적인데 틴트너의 해설처럼 멘델스존을 연상시킨다. 예를 들면 멘델스존의 교향곡 5번 2악장의 트리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4악장은 현이 애절한 선율을 연주하면서 시작된다. 이어서 금관의 장엄하고 강렬한 주제가 등장한다. 이어서 현의 명랑한 주제가 나온다. 현의 주제는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도입부 같은 리듬으로 되어 있고 많은 해설에서 입을 모으듯 브루크너의 주제 중에서는 거의 가장 명랑한 주제일 것 같다. 금관의 주제는 후에 푸가로 발전이 되고 현의 명랑한 주제는 악기와 조를 조금씩 바꿔가면서 나온다. 두 주제는 너무나 큰 대비를 이루는 데 마지막에 2주제가 3주제의 리듬을 타고 나올 때는 정말 감탄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