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ckner

브루크너 교향곡 00번 f단조

romantiker74 2005. 3. 20. 09:47


 

 

브루크너가 오토 키츨러의 수업을 마칠 때 키츨러가 3개의 숙제를 낸다. '교향곡, 연주회용서곡, 합창곡을 하나씩 작곡해서 갖고와봐라.' 그때 작곡한 작품이 이 교향곡 F단조라고 한다. 브루크너가 40평생 배운 지식을 총 동원한 작품이었겠지만 키츨러의 반응은 별로였다고 한다. '별로 영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키츨러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할 수는 없지만 단조를 택해 고전적인 느낌의 악상을 전개한 1악장을 듣다보면 어딘지 기교적으로 작곡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졸업숙제였다는 걸 감안하면 작품의 성향이 이해가 된다.
1악장은 상당히 고전적인 느낌을 준다. 박진용씨는 팡파르와 그 뒤에 나오는 현의 에코가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서곡을 연상시키고 상당히 바그너의 그림자가 많이 드리워져있다고 했지만 그 말에 대해서는 약간 갸우뚱하게 된다. 물론 팡파르의 리듬이 너무 유사하기도 하고 기법도 유사하지만 아무래도 느낌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브루크너 교향곡 00번의 1악장은 멘델스존을 자주 연상시킨다. 딱히 어느 대목이 멘델스존의 무슨곡의 어느 대목과 비슷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현을 중심으로 같은 길이의 음표로 화음을 펼쳐나가서 바로크적인 느낌을 주도록 전개하는 부분이 멘델스존을 자주 연상케 한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이 작품을 들려주면서 멘델스존의 숨겨진 교향곡을 발견했다고 한다면 믿을까? 그렇진 않을 것 같다. 트럼펫이 지속음을 연주하는 부분이 많아 이 작품이 브루크너의 작품임을 알려준다.
2악장의 도입부는 많은 분들이 지적하듯이 슈만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중반 이후에 현을 배경으로 오보에가 애절한 멜로디를 부르고 클라리넷이 이어받는 부분은 틴트너의 지적대로 모차르트의 교향곡 41번의 2악장을 떠올리게 한다.
3악장은 이 교향곡에서 많은 분들이 격찬하는 악장이다. 틴트너는 특히 키츨러에게 항의하듯 아주 영감으로 가득찬 악장이라고 평하면서 브루크너의 왠만한 초기작의 스케르초보다도 좋다고 말하고 있다. 확실히 이전 악장에 비해 브루크너의 개성이 많이 투영된 악장이다. 대신 이후 브루크너의 스케르초에 비해 짧고 간단하게 되어 있어서 역시 초기작이라는 느낌은 받는다. 서정적인 트리오도 매력적인데 모차르트의 미뉴엣 속에 파묻혀있는 트리오를 꺼내온 듯 하다.
4악장은 3악장과 달리 역시 습작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욕?을 먹고 있다. 슈만을 연상시킨다고 하는 데 팡파르에 의한 도입은 슈만 교향곡 1번의 피날레를 연상시킬 때가 있다. 앞의 세 악장에 비해 조금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서인지 브루크너 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피날레는 다시 축제적인 팡파르로 끝나서 이 작품이 브루크너의 작품임을 확인시켜준다.